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국민 과일' 바나나


바나나가 2년째 과일 매출 1위를 지켰다. 과육이 연해 50대 이상이 즐겨 찾는다니 고령화 추세와 맞물려 '국민 과일'로 자리 잡을 것 같다. 세계적으로도 바나나는 가장 흔한 과일이다. 전체 작물 중에서 밀과 쌀, 옥수수에 이어 생산량이 네 번째로 많다. 역사도 깊다. 인류는 7,000년 전부터 뿌리와 열매를 먹었다.


△구약성서 창세기의 선악과가 바나나였다는 주장도 있다. 구텐베르크 성경에 '선악(malum)'과 '사과(melon)'의 파생어 철자가 비슷해 번역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성의 목젖 부위를 일컫는 '아담스 애플'도 아담스 바나나로 불려야 하는데 바나나는 딱딱하지도 않고 씨도 없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애초의 바나나는 그랬다. 딱딱하고 씨가 있었다. 요즘의 씨 없는 바나나는 돌연변이를 품종 개량해 얻은 유전자의 무한복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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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대량 재배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미국의 골드러시. 서부로 사람을 보내고 동부로 돌아가는 빈 배를 채우려는 해운업자들에 의해 중남미의 바나나 농장이 개척되고 품질 규격화가 이뤄졌다. 냉장 선박 등장과 훗날 운송추적기술(바코드 시스템)도 여기서 비롯됐다. 문제는 전염병. 1903년부터 전염병이 돌자 미국인 농장주들은 기존 농장을 폐쇄하고 새로운 농장을 지었다. 무한한 땅과 값싼 노동력을 원하는 미국 자본의 탐욕과 착취는 거센 저항을 불렀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 동안의 고독'에는 1928년 12월6일 콜롬비아에서 2,000여명의 사망자를 낸 바나나 학살이 그대로 나온다.

△피의 저주 때문일까. 전염병은 멸종을 불렀다. 크고 풍미도 뛰어났다는 '그로 미셀'종은 1950년대에 자취를 감췄다. 위기의 순간에 영국 캐번디시 연구소가 보관 중인 씨 있는 바나나에서 기적적으로 작지만 병에 강한 새 품종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70년 넘게 누려온 캐번디스종의 시대도 새로운 전염병의 등장으로 저물고 있다. 과학자들이 애쓰고 있지만 꺾꽂이 방식의 교배로 신품종을 개발하기란 여전히 어렵단다. 어쩌면 바나나는 추억 속에서만 국민과일로 남을지도 모른다. 종의 다양성이 사라진 마당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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