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뒷북만 치는 금융감독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
카드 사태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003년 4월. 당시 김석동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1국장은 카드 사태 해결을 위한 '4∙3조치'를 발표한 자리에서 관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올해 초. 그는 금융위원장 취임 일성으로 규율과 기강을 내세웠다. 김 위원장은 "시장질서를 어지럽히고 왜곡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단호히, 그리고 엄정히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금융위의 존재감만으로도 시장의 질서와 기강이 설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관치금융에 대한 김 위원장의 지론은 여전한 셈이다. ELW·저축은행 등 잇단 사태 최근 들어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에서 중심을 잡고 금융시장을 강하게 끌고 나갈 필요성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관치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금융감독당국은 일이 터진 후에 뒷수습하기에 급급했을 뿐 위기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노력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최근 증권가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주식워런트증권(ELW) 사태가 대표적이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는 6월23일 ELW 거래와 관련해 스캘퍼(초단타매매자)들에게 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12개 증권사 사장들을 일제히 기소했다. 10명이 넘는 증권사 사장들이 불공정거래와 관련해 한꺼번에 기소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스캘퍼들에게 일반인보다 빠르게 주문을 체결할 수 있는 전용선을 제공한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느냐에 대해서는 증권사들과 검찰 사이에 주장이 엇갈리고 있어서 이 부분은 법정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이다. 걱정스러운 대목은 감독당국의 태도다. ELW가 개인들의 무덤이 된 지 오래고 스캘퍼의 특혜와 이에 따른 개인투자자들의 손실이 사회 이슈로 비화된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감독당국은 정기적으로 증권사에 대한 업무 검사를 하고 있어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사건이 검찰로까지 가지 않도록 할 수도 있었지만 증권사 대표들이 무더기 기소될 때까지 아무런 사전조치가 없었다. 결국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면서 ELW시장 자체를 크게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일부 지역경제와 정치권을 흔들었던 저축은행 부실도 마찬가지다. 저축은행 부실이 이처럼 커진 가장 큰 원인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확대하도록 해준 이른바 '88클럽조치'라는 데 대해 별다른 이견이 없다. 2006년 자기자본비율 8% 이상, 고정이하여신비율 8% 미만을 충족하는 저축은행에 대해 대출규제를 완화해준 88클럽 조치로 저축은행들이 부동산 PF 대출을 과도하게 늘렸고 이후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부실이 커진 것이다. 기가 막힌 것은 금융권 부실을 차단해야 할 책임이 있는 금융위가 앞장서서 저축은행 대출 규제를 풀었다는 점이다. 사후조치보다 사전대응책 절실 사례는 이것 말고도 무수히 많다. 최근 잇달아 터져 나오고 있는 금융권의 정보기술(IT) 보안사고만 하더라도 그렇다. 금융위는 농협과 현대캐피탈의 해킹사고와 한국거래소 등의 전산장애가 잇달아 발생한 다음에야 IT 보안사고에 대한 제재 수준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대책을 내놓았다. 최근 들어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금융당국이 관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를 문제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관치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미국발 금융위기에서도 보듯이 갈수록 금융기법이 고도화되는 시기에는 위기가 발생한 후 뒷수습하는 데 급급해서는 시장상황에 제대로 대처하기가 어렵다. 이제라도 금융감독당국의 주안점을 사후약방문 식이 아니라 사전에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데 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