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동십자각]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학부제」로 대학에서 인문학이 질식상태에 이르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또 교육부가 이공계에 지원을 집중키로 한 방침에 대해 인문학쪽의 반발도 거센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교육부의 정책방향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그럴만한 백그라운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이런 논란을 보면서 몇가지 떠오르는 생각은 있다. 먼저 대학과 졸업생의 수. 대중교육을 지향하는 미국의 영향때문이겠지만 대학이 너무 많다. 대학가겠다는 사람이 넘친다고 해서 정원을 늘리고 마구잡이로 대학설립을 허가하는 나라는, 글쎄 과문한 탓인지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고학력 실업은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었다. 꼭 IMF한파때문이 아니더라도 언제가 우리 발목을 붙잡을 일이었다는 얘기다. 연간 20여만명씩 쏟아져 나오는 대졸자들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대략 매년 5%대의 실질 성장을 이어가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우리 경제의 규모가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둘째는 대학교육 시스템이다. 지금의 대학은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잊고 있다. 기술을 지닌 직업인을 배출하는 것은 대학교육의 목표가운데 하나일 뿐 대학교육 목표의 전부는 아닌 까닭이다. 단지 직업교육이 목적이라면 굳이 대학에 가야 할 이유가 없다. 직업인으로서의 전문교육과 돈버는 방법은 대학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와 인구가 비슷한 프랑스·영국·독일 등의 대학숫자와 대학에 관한 사회일반의 인식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들은 공부에 소질있는 학생들에게만 대학진학을 허용한다. 제도적으로 그렇게 되어있다. 물론 대학을 나온 이와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수입격차도 그리 크지 않다. 게다가 교양인으로 살아가는데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아주 오래전 프랑스의 대학입학자격고사인 바칼로레아의 철학문제. 「이방인」에서 보여준 「뫼르소의 행동양식으로 카뮈의 실존주의를 논하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얼마나 이해하고 답안을 작성했는가와는 별개로, 그들은 고교과정에서 그정도 수준의 철학강의를 듣는다. 사람은 살아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살고 어떻게 돈 버는가에 따라 인간은 인간이 되기도 하고 인간이하가 되기도 한다. 역사 철학 문학으로 대표되는 인문학은 이 「인간이하」를 거부하기 위한 질문·가치·기준·사유이다. 이 근본적 질문을 폐기하는 사회는 「기본이 없는 사회」다. 지금 운위되는「신지식인」의 개념은 무엇인가. 발전이나 선진화는 튼튼한 문화인프라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고대 헬레니즘의 고전, 근대초기의 르네상스 인문주의, 그 후의 문학 예술 철학 같은 것들이 서구의 선진화에 어떤 밑거름이 되었는가를 되짚어 보면 자명한 일이다. 지금 우리네 사정은 어떤가. 소위 「IMF시대」를 맞아 당장 먹고 사는 문제와 거리가 있는 분야는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 중요한 「경제」조차도 경제논리로만 접근해서는 풀기가 쉽지 않다. 설사 답을 얻었다해도 그것이 정답이란 보장도 없다. 세계시장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우리 산업의 문제점들이 이를 역설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무엇이든 「편중」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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