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6월6일] <1415> YMCA 태동


1844년 6월6일, 영국 런던. 청년 12명이 모였다. 틈틈이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해 영성을 가다듬자는 모임은 곧 기독청년회(YMCA)라는 이름을 얻었다. 모임을 주도한 인물은 조지 윌리엄스(당시 23세). 대형 포목점의 점원으로 근무하는 그는 어렵지 않게 비슷한 처지의 동년배를 모았다. 대부분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라는 회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 10~12시간씩 주 6일 근무하는 열악한 환경. 젊은이들은 믿음을 통한 수양과 신체활동에서 대안을 찾았다. 비슷한 청년운동이 한 세기 전부터 영국은 물론 독일 지역에도 존재했지만 YMCA 운동에는 유별나게 사람들이 몰려들며 세계각국으로 퍼져 나갔다.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인간성 말살 위기가 운동이 확산되는 토양을 제공한 셈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국제YMCA 창립총회가 열린 1853년 Y의 규모는 7개국 397개 지부에 회원 3만369명. 파리대회는 Y운동의 저변을 보다 확대시켰다. 모토로 채택한 ‘모두가 하나(요한복음 17장 21절)’라는 정신 아래 Y는 국제적 연대로 커졌다. 오늘날 국제Y의 회원 규모는 세계 126개국, 4,500만명에 이른다. 보다 나은 삶과 정신세계를 원했던 젊은이들의 꿈이 세계 최대 규모의 민간단체로 성장한 것이다. 한국에 Y가 도입된 것은 1903년. 황성기독교청년회로 시작한 한국의 Y운동은 민족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각종 신문물과 운동경기의 보급을 주도하고 일제의 압박 아래 신음하는 한민족의 계몽과 교육을 이끌었다. 독립운동가도 수없이 배출했다. 요즘도 한국Y는 각종 시민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건강한 경제는 건강한 시민사회에서 나온다. 165년 전 청년 윌리엄스가 품었던 보다 나은 삶과 정신세계를 향한 꿈은 언제나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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