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정·재·학계 친미파 심고… 밉보인 지도자는 매장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br>(마고사키 우케루 지음, 메디치 펴냄)


1945년 9월 2일 일본은 연합군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굴욕적인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다시는 군사대국의 꿈조차 꾸지 않겠다는 천황의 맹세와 함께 연합국 총사령부의 일본 통치가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사실상 미군의 군사 점령을 받게 됐다고 볼 수 있다.

36년간 일본 외무성에 몸담았던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의 역사,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역사를 좌지우지한 배후가 미국이라는 '공공연한 비밀'을 조목조목 입증하고 있다. 전후 일본의 대표적 외교관이자 정치인인 요시다 시게루(1878~1967)는 미국의 권력에 편승해 오랜 시간 내각총리대신을 지내며 친미파의 거두 역할을 했다. 반면 미국에 저항하며 자주 노선을 주장했던 이시바시 탄잔은 자주파 선봉에 섰지만 결국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음모론을 제기한다. 시게미쓰 마모루 외상은 미군의 완전 철수를 주장하다가 의문의 급사를 당했으며 소련과의 국교 회복을 추진했던 하토야마 이치로 수상은 공직에서 추방당했다. 또 미국의 유사시 주둔안을 주장했던 아시다 히토시는 쇼와전공 사건으로 정계에서 강제 은퇴를 당했으며 미국보다 먼저 중일 국교 정상화를 주장했던 다나카 가쿠에이 수상 역시 록히드 사건으로 정계를 떠났다. 저자는 미국이 일본의 자주파를 친미파로 바꾸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일본의 검찰과 언론이 이러한 역할에 앞장섰다고 주장한다. 즉, 미국이 일본 내에 친미파를 육성ㆍ지원함으로써 정계ㆍ재계ㆍ학계 등 일본 사회 전체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했다는 것이 책의 핵심이다.

미국에 의해 일본의 지도자만 매장당한 것은 아니다. 한때 미국의 총애를 받았던 지도자들이 하루 아침에 이용 가치가 사라지면서 권력에서 축출되고 심지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경우가 세계 도처에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사건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한다. 박정희는 베트남 전쟁에 군대를 파병하는 등 미국에 협조적이었지만 점차 민족주의 경향이 짙어지며 독자적으로 핵무기 개발 계획을 추진하다가 미국의 미움을 샀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한국판 서문에서 "한미 관계는 미일 관계보다 훨씬 더 긴박한 순간이 많았다. 한국전쟁에서 수많은 젊은 미군들이 피를 흘렸다. 미군이 참가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한국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미국으로서는 한국 문제에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있고 미국이 한국 내정에 개입한 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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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이데올로기가 유용성을 상실한 이 시대에 저자의 주장은 시대 흐름과 상반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한미 동맹 6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새겨들을 만한 충고가 담겨 있다. 1만 8,000원.

정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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