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글로벌거래소 통합서 왕따…공기업 족쇄부터 풀어야


지난 15일 뉴욕증권거래소를 운영하는 NYSE유로넥스트는 독일 증권거래소 운영 기업인 도이체뵈르세(DB)와 양 거래소를 합병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병으로 시가총액 17조 달러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거래소가 탄생하게 됐다. 이는 국내 증시 시가총액(1조달러)의 17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는 증권거래소간 합종연횡(合從連橫)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워 거래 비용을 줄이고 투자자들이 거래할 수 있는 종목을 다양화함으로써 글로벌 자본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다. 국경을 넘는 거래소간 합병은 미국과 독일의 사례 이외에도 무수히 많다. 지난 8일에는 영국 런던거래소가 캐나다 증권거래소를 인수하기로 했고 올 1월에는 콜롬비아 거래소와 페루 거래소가 합병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같은 물결은 최근에는 아시아로도 밀려들고 있다. 지난 1월 싱가포르거래소(SGX)는 호주증권거래소(ASX)를 인수했고 일본과 중국, 아세안 등에서도 거래소간 통합과 협력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만 해도 글로벌 거래소간 경쟁은 유망 기업들의 상장 유치를 하는 수준 정도로만 이뤄져 왔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대체거래시스템 등 복수 거래 시장이 들어서면서 증권 매매 시장 경쟁이 격화됐고, 이 때문에 거래소간 합종연횡이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전세계 종목들의 매매가 특정 거래소에 상관 없이 이뤄지면서 투자자들에게 보다 다양한 거래 형태를 보다 빨리 처리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줘야 했고, 이를 위해 서로간의 장점을 흡수하는 M&A가 활발해진 것. 엄경식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2000년대 중ㆍ후반 들어 빠른 속도를 갖춘 대체거래시스템(ATS)과 다자간 거래시스템(MTF)를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이 채택하면서 시장 내 경쟁이 격화됐고, 이것이 거래소간 합병의 주요 동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 남미, 아시아 등 거의 모든 대륙에서 증권거래소간 합종연횡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유독 한국만 글로벌 흐름에서 소외돼 있다. 한국거래소(KRX)가 올해를 ‘글로벌 선진 거래소 도약 기반 구축의 해’로 삼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재 KRX가 해외 시장에서 거둔 성과는 캄보디아ㆍ라오스ㆍ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에 대한 주식ㆍ채권 등 정보기술(IT) 시스템 수출과 해외 거래소와의 제휴, 해외 상장기업 유치 등에 그치고 있다. KRX는 글로벌 거래소들간의 합병 대열에는 아예 명함도 못내밀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거래소간 M&A가 가속화되면서 세계 증시는 단일 시장(원보드)을 향해 가고 있는데 KRX만 이 대열에서 탈락할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면 왜 한국만 유독 글로벌 거래소 통합의 흐름에 합류하지 못하고 왕따 신세에 놓여 있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KRX가 공공기관의 족쇄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KRX는 지난 2009년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서 M&A를 위한 필수조건인 기업공개(IPO)가 사실상 원천 봉쇄된 상태다. 김봉수 KRX 이사장은 27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공기관이라고 해서 IPO를 못하라는 법은 없지만 공공기관이라는 디스카운트 요인을 안고 제대로 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공공기관으로 묶여 예산 등을 일일이 통제받는 상황에서는 증시 상장을 할 수 없고 설령 한다고 해도 효과가 반감된다는 얘기다. 통상 M&A나 업무 제휴를 위한 지분교환을 하기 위해서는 거래소의 가치를 산정하는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하는데 증시 상장이 안돼 있는 상태에서는 기업가치를 평가 받는데에만 몇 개월이 소요돼 적시성이 떨어지게 돼 일을 추진하기가 어려워진다. M&A 등에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데 거래소의 유보금 만으로는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 자금마련을 위해서도 KRX 상장은 꼭 필요하다. 따라서 글로벌 거래소간 합병이라는 큰 물결에 KRX가 동참하기 위해서는 증시 상장이 필요하고 이를 추진하려면 먼저 공공기관에서 해제돼야 한다는 것이 거래소의 논리다. 정부는 증권 거래소의 인프라적 기능과 시장 독점적인 지배 상황, 금융 부문에 대한 규제 필요성 때문에 KRX의 공공기관 해제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논리는 금융을 비즈니스로 인식하는 글로벌 흐름과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연구원은 “KRX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데 있어서 현재의 공공기관 지정이 합당한 것인지는 냉정히 따져 봐야 한다”며 “증권 거래 시장 자체를 산업으로 인식하는 최근의 흐름을 봤을 때 거래소 지위에 대한 전향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국내 자본 시장을 독점 지배하고 있는 것이 M&A에 소홀한 이유라는 지적도 있다. 거래소가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이유이기도 한 시장의 독점적 지배로 경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서 M&A가 남의 얘기처럼 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인형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실상 KRX는 경쟁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증권 거래를 위한 안정된 서비스만 제공하는 유틸리티적 기능만 담당하고 있다”며 “경쟁사로부터 시장을 방어하겠다는 유인 자체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글로벌 유동성들이 보다 수월한 결제 시스템과 용이한 규제 환경 등을 찾아 발 빠르게 국경을 넘나드는 현재 시점에서 KRX의 ‘우물 안 개구리’ 식 자세는 결국 국내 자본 시장 전체를 위축시켜 국내 증권 시장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사실 아시아의 경우 경제 개방성ㆍ연계성 면에서 장벽이 높아 거래소간 M&A에 한계가 있었지만 최근 싱가포르와 호주 합병의 예에서 보듯 아시아 시장도 이제 글로벌 M&A 환경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며 “KRX의 변화가 필요한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M&A를 통한 세계 거래소 재편과정에서 소외될 경우 KRX가 아시아 지역 내 중소 거래소로 전락할 수도 있을 것” 이라며 “만약 필요하다면 복수 거래소나 대체 거래소를 세우는 등의 경쟁 요인을 도입하는 데도 반대할 의향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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