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보수적 투자성향 등으로 성장잠재력이 저하되고 있다며 기업들에 대해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과 기업가 정신을 발휘한 적극적인 투자자세를 재차 강조했다. 야생적 충동은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기업가들이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하더라도 직감을 토대로 적극적으로 나서는 행동방식을 빗대어 사용했던 말로, 이 총재가 기업가 정신을 강조한 것은 최근 들어서만도 세번째다. 이 총재는 28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21세기 경영인클럽 제주 포럼’ 강연에서 “외환위기 이후 나타난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들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지속적인 안정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각 경제주체들의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며 이같이 역설했다. 이 총재는 기업들의 위험회피 성향이 커지고 보수적 경영행태가 확산되면서 지난 90∼97년 설비투자 증가율이 연평균 9.6%였으나 98∼2005년에는 4.3%로 떨어졌으며 고용도 정규직보다 임시ㆍ계약직을 선호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그는 “96년 이전까지는 기업이 무모할 정도로 투자에 열심이었고 과도하게 위험을 감수했지만 지금은 지나치게 위험을 회피하고 안전한 쪽으로만 가려고 한다”며 “이제는 위험을 피하기만 해서는 될 일이 아니며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하면서 투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어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과 정직한 회계처리, 정보공개ㆍ공시확대 등으로 시장의 신뢰를 얻으려는 노력을 강화해야 하며 기술개발과 연구개발 투자로 경쟁력을 높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금융기관들도 외환위기 이후 대출위험 평가를 엄격히 해 안전자산 위주의 영업만 영위하려 한다며 “금융기관들이 영업을 50년 동안 해왔으면 50년 영업의 결과가 각종 정보나 데이터로 축적돼 있어야 하지만 불행히도 30~40년의 데이터가 누락돼 있으며 (이는 지금의 금융기관들이)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복지지출을 늘리면서 재정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한 뒤 정부가 중장기 계획 아래 재정 건전기조를 유지하는 한편 공적연금의 수지악화와 통일비용 등의 재정지출 수요에 대한 대비책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기업투자 환경을 개선하고 차세대 성장동력을 육성하기 통해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한편 사회안전망 확충과 저소득층의 교육기회 및 취업능력 제고를 통해 경쟁열위 부문의 자생력을 배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총재는 해외소비 지출이 늘고 고급 소비가 확산되고 있는 가계 부문에 대해 소득수준에 맞는 합리적 소비와 적정한 부채관리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면서 노사관계에 대해서는 상생의 정신에 바탕을 둔 노사문화의 선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