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재정부, 11년만에 금통위 열석 발언권 행사

침묵속 "탕탕탕" 회의 개시…건물 밖에선 "관치반대" 집회<br>새벽 홍콩서 귀국 許차관 "회의에 늦을라" 부담감에 은행회관서 2시간 토막잠<br>'상반기내 금리인상 곤란' 완곡한 발언권 행사… 동결결정은 평소보다 빨라

8일 오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하려는 허경욱 기획재정부 차관의 승용차가 정문을 통과하자 한은 직원들이 정문에서 관치금융을 중단하라는 피켓을 들고 차량을 막고 있다. 이호재기자

8일 오전4시30분. 전날 홍콩에서 한국경제 설명회를 갖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허경욱 기획재정부 차관은 자택 대신 서울 명동의 은행회관을 찾았다. 오전9시로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에 늦지 않기 위해서였다. 한은의 불편한 감정만큼이나 11년 만에 금통위에서 열석발언권을 행사하는 정부 당국자의 부담감 역시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두시간여의 토막잠을 잔 뒤 허 차관은 곧바로 남대문 한은 건물에 도착했다. 오전8시40분. 한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정문 앞에서부터 금융노조와 한은 직원 20여명이 열석발언권 행사에 반대하는 집회를 갖고 있었고 "관치금융 철폐하라!" "총재님! 금통위원님! 힘내세요. 국민이 있잖아요" 등의 피켓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허 차관의 승용차는 정문에서부터 일부 집회 참가자들에 의해 둘러싸였다. 배경태 한은 노조위원장은 "법에 (열석발언권이) 보장돼 있기 때문에 참석 자체를 저지하지는 않았다"면서도 "현 총재의 임기 만료가 맞물린 미묘한 시점이기 때문에 상황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말했다. 이성태 총재가 임기 전에 기준 금리를 올릴 수 있고 정부가 이를 막기 위해 발언권을 행사한 것이라는 관측을 상기한 것이다. 오전9시 15층 회의장. 모든 카메라가 허 차관에게 맞춰졌다. 언제나 주빈이었던 이 총재는 입을 꾹 다문 채 카메라를 우회해 회의장에 들어섰다. 허 차관의 '열석' 자리는 의장석에서 봤을 때 오른쪽 4번째 끝자리, 이 총재와는 가장 먼 거리였다. 그는 기자들에게 "정부의 의도가 오해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와의 별도 통화에서도 같은 얘기였다. "정부는 금통위의 금리 결정 등 고유 권한을 존중한다. 정책 공조를 강화하기 위해 열석발언권을 행사하게 됐다"는 말도 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 총재는 침묵 속에서 회의 개시를 알리는 의사봉을 세 번 두드렸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허 차관은 그리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 참석하니 잘 부탁한다'면서 경제상황에 대한 정부의 인식을 비교적 단순 명료하게 전했다. 하지만 그의 발언에는 "당분간, 적어도 상반기 안에는 금리 인상이 곤란하다"는 뜻이 완곡하면서도 강하게 묻어났다. 열석발언권 행사에도 불구하고 금리 결정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전10시를 조금 넘긴 뒤 금리 동결 발표가 나왔다. 평소보다 오히려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오전11시20분. 회의를 마친 뒤 기자실에 들른 이 총재의 표정에서는 차분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밝지 않았고 톤은 매우 낮았다. 무덤덤함 속에서도 씁쓸함이 가득했다. 정부의 열석발언권 행사에 대한 연이은 질문에도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은 없다"며 말을 아끼려 애썼다. 하지만 한은의 독립성을 역대 어느 총재보다 강조해온 그답게 뼈 있는 말을 곧 꺼냈다. "금통위의 의사 결정은 금통위원 7명이 하는 것" "(금리가 결정된) 결과를 보고 사후적으로 판단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소신은 고수하겠다는 얘기다. 간담회 중반. 이 총재는 "임기가 3월로 끝나는데…(금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개인 생각과 판단은 있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익명을 요구한 한은의 한 관계자는 "이 총재가 이제 금통위를 주재할 기회는 두 번이다. 이 두 번에서 열석발언권을 지닌 정부와 이 총재의 행동이 앞으로 수년 동안 중앙은행의 독립성, 그리고 정부와의 관계를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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