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한국은행에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성장공약 달성을 위한 통화정책 방안을 요구하는 등 중앙은행 정책에 간여할 뜻을 내비치면서 ‘한은 독립성’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한은-인수위, 팽팽한 긴장감=9일 한국은행의 인수위 업무보고는 강만수 경제1분과 간사와 한국은행의 ‘악연’으로 긴장감이 높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실제로도 한은 관계자들은 20여명이 버스를 타고 예정시간보다 40분이나 일찍 삼청동 금융연수원에 도착했으며 미리 회의실에 자리잡고 앉아 기자들의 질문에도 일절 답변하지 않는 등 긴장한 분위기로 인수위 관계자들을 기다렸다.
업무보고에서도 한은은 인수위가 바란 대로 통화정책 결정시 물가는 물론 부동산 등 자산가격을 ‘좀 더 유념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강 간사는 업무보고를 받은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통화정책으로 부동산 투기를 막아야 한다는 입장을 한은 측에 전달했고 한은 역시 통화정책 결정시 부동산 등 자산가격을 반영하겠다는 의견을 준비해왔다”며 “이에 대해 의견일치를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수위는 ‘한은이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는 지적에 대해 이명박 정부 통화정책의 최우선 고려대상이 부동산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진화에 나섰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통화정책을 통해 부동산 투기도 막아야 하겠지만 경제 살리기도 중요하다”며 “통화량의 급격한 조절은 경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통화가 마치 부동산을 잡기 위한 모든 수단인 것처럼 오해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한은의 이 같은 보고내용이 사실상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인수위 관계자는 “한은의 독립성은 철저히 유지돼야 한다는 것에는 업무보고에 참석한 인수위원들도 모두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 한은 길들이기(?)=차기 정부가 한은을 마땅찮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일찌감치 감지됐다. 정부 부처 보고가 줄줄이 잡혀 있었지만 일정에도 빠졌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때와 달리 실무인력의 공식파견 요청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수위가 한은에 MB의 대표적 공약인 ‘7ㆍ4ㆍ7’ 달성을 위한 통화정책 방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물론 부동산정책 집행시 한은의 고유업무인 금리정책을 활용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한은의 독립성 문제가 수면 위로 불거졌다.
이날 업무보고 자리에서도 인수위는 한은에 통화정책시 단순히 물가 부분에만 너무 초점을 맞추지 말고 성장 등 거시경제의 큰 틀에서 봐달라면서 정부정책에 협조할 것을 강조해 이 같은 우려감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인수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정부기구로 정부정책과 손발을 맞추고 있다”며 “민간기구인 한은이 국정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차기 정부가 한은법을 개정해 한은의 독립성을 수정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분석도 등장한다.
◇한은, 내부 반발기류 거세=이 같은 인수위의 한은 개입 의사에 대해 한은 내부의 반발기류도 감지되고 있다. 업무보고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인수위 측에서 정부의 거시경제적 틀에서 한은의 협조를 당부했다”면서 “수긍하는 면도 있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또 “경제 살리기에 대한 인수위의 요청이 많았지만 한은이 전지전능한 신도 아니고 한계가 있다”며 “특히 시장에서 지켜보는 눈도 많은데 억지춘향 식의 정책을 집행하기는 쉽지 않다”고 전했다.
한은의 또 다른 관계자는 “한은이 물가 쪽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통화정책을 편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 “한은의 정책은 경기ㆍ물가ㆍ성장 등을 고려하며 결코 정부정책과 어긋나지 않는다”며 인수위의 한은 통화정책 편협론에 반발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세계적 추세이며 미국 FRB는 정부기구지만 한편으로는 막강한 감독 권한도 주어져 있다”며 “한은과 FRB를 단순 비교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