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 비정규직의 역습

韓 임시직 비율 OECD국 중 4위

인력운용 유연성 제고 이점있지만 숙련도·충성도 하락 따른 부작용 커

파업확률 정규직보다 13배 높아 비용 줄이려 남용 말고 균형책 필요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한국 노동시장의 변화 가운데 가장 주목할 부분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격한 증가다. 산정기준이 다르기는 하지만 현재 고용노동부는 전체 근로자의 33% 정도를 비정규직으로 보고 있고 통계청은 40% 정도로, 노동계는 50%를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0년 이후 한국의 비정규직 규모는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에 달한다고 한다.

각 국가마다 비정규직에 대한 개념이 달라 아직 통일된 통계수치는 없고 비정규직의 일부인 임시직에 대한 국제통계가 발표되고 있다. 한국의 임시직 비율은 21% 정도로서 OECD의 회원국 중 폴란드와 스페인·포르투갈 다음으로 높은 4위에 해당하며 한국의 임시직 비율은 회원국 평균인 12.8%보다 1.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기업의 인력운용에 유연성을 제공하기 위해 어느 정도 수준의 비정규직을 운용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즉 경기변동에 대응하고 단기적·일시적인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서는 임시직 직원을 채용하는 것이 기업에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매년 호봉제로 임금이 자동으로 상승, 임금이 거의 고정비용으로 간주되는 환경에서는 일정 수준의 비정규직은 기업 노동비용의 과다지출을 막는 역할도 한다. 1990년대의 독일에서 보듯이 고임금의 정규직이 지나치게 많으면 고인건비를 견디지 못한 기업들이 외국으로 산업설비를 이전하는 산업공동화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많아서 생기는 부작용도 만만찮다. 기업에 비정규직이 지나치게 많으면 직원들의 숙련도가 저하되고 기업에 대한 충성도가 하락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겪게 된다. 수년 전 국민들을 큰 혼란에 빠트렸던 금융권의 개인정보유출도 금융권의 개인정보만을 담당하는 외주사에서 일어난 일이며 한 식당 체인에서 비정규직 종업원이 임산부인 고객을 거칠게 다뤄 사회 문제가 된 사건도 있었고, 세월호 사건에서 보듯이 일반 대중이 이용하는 안전시설에서 승무원과 안전요원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이어서 사고가 날 때마다 훈련과 경험이 모자란 비정규직 직원들의 미숙한 대응으로 아찔한 경험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더욱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과의 차별적인 대우에 불만을 품고 노사분규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다. 통계적으로 보면 비정규직 노조는 정규직 노조보다 파업을 경험할 확률이 13배나 더 큰 것으로 나타난다.

관련기사



대체로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은 근로자에게 고임금을 지불하고 교육훈련을 많이 시켜서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해 이익을 많이 내고 다시 고임금을 지불하는 선순환구조의 하이로드(high road) 산업구조를 운영한다.

반면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 개발도상국은 근로자에게 저임금을 지불하고 교육훈련에 거의 투자하지 않아 저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고 이익 규모도 적어서 저임금을 지불하는 악순환구조의 로로드(low road) 산업구조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산업구조는 하이로드보다는 로로드에 가깝고 이는 한국 경제가 낮은 인건비를 무기로 하는 개발도상국과 저부가가치 시장에서 경쟁해야 함을 의미한다.

사회과학의 대부분 영역이 그렇듯이 비정규직의 사용도 결국 중용과 균형이 중요할 것이다. 정규직 일변도의 인력운용도 곤란하지만 비정규직의 남용은 더 큰 문제를 가져온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의 역습은 이미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기업에서 비정규직은 주변적·한시적인 업무에만 사용하고 국가 전체적으로는 그 규모를 점차 줄여나가는 것이 기업과 근로자, 그리고 국민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향일 것이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학장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