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17일] 토머스 왓슨


양복정장에 넥타이. 비즈니스맨의 기본 복장이다. 누가 퍼뜨렸을까. IBM을 세운 토머스 왓슨(Thomas Watson)이다. 세일즈맨은 금융인 이상으로 깔끔하고 신사의 덕목을 갖춰야 한다는 그의 생각이 오늘날 직장남성의 표준으로 굳어졌다. 1874년 2월17일 뉴욕에서 태어난 왓슨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 17세부터 회계출납원, 피아노ㆍ재봉틀 세일즈를 거쳐 금전등록기 제작ㆍ판매사인 NCR에 들어갔다. 현대 세일즈의 원조격인 패터슨 사장 밑에서 그는 최고 성적을 올렸다. 왕성한 영업의 결과는 재판. 경쟁사의 비밀을 캐내 저가에 매수하는 파괴전략의 책임을 사장 대신 떠안아 징역 1년을 선고(1912년)받았다.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직장과 재산을 잃은 왓슨의 새 직업은 계산기와 저울ㆍ시간기록계를 생산하는 CTR 사장. 오너를 찾아가 사무기기 시장을 석권해주겠다며 자신을 세일즈한 결과다. 약속대로 그는 CTR를 1등으로 만들었다. 비결은 인력 정예화. 영업맨들에게 종신고용을 보장하고 판매와 리스 전략을 병행하니 매출이 가파르게 올라갔다.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을 얻은 그는 사명을 IBM으로 바꾸고 대공황기에 오히려 설비를 늘렸다. 1950년대 IBM의 미국 사무용 계산기 시장점유율은 90%선까지 올랐다. 왓슨은 몇 가지 실수도 저질렀다. 제록스 복사기로 이어진 발명가 칼슨의 특허기술 판매 제의를 거절해 두고두고 후회했다. ‘컴퓨터의 세계 수요는 연간 5대가 고작일 것’이라며 컴퓨터 개발에 뒤늦은 적도 있다. 아들과 사이도 좋지 않았다. 왓슨의 판단 착오에도 IBM은 늘 수위를 달렸다. 직원들의 충성도가 남달랐던 덕이다. 1956년 사망할 때까지 왓슨이 좌우명처럼 여긴 게 있다. ‘노동력은 비용이 아니라 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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