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명품에 빠진 한국사회


"옛날 학자는 자기를 위해 하고(古學者爲己), 요즘 학자는 남을 위해 한다(今學者爲人)." 얼핏 보면 이타적인 요즘 학자들을 칭찬하는 듯하다. 그러나 원래 학문은 자기 자신의 수양이 목적인데 지금은 남에게 자기의 박식(博識)을 자랑하고자 한다는 뜻으로 논어 헌문편(論語 憲問篇)에 나온다. 옛 사람들은 자기 내면을 채우려고 멋을 냈는데 요즘 사람들은 남에게 자기의 부(富)를 과시하려고 외면을 치장한다. 예나 지금이나 주변의 시선에 예민한 사람들의 욕망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나의 속에 숨겨진 '진짜 나'는 찾기 어렵고 남의 눈에 비친 나의 겉 모습을 보긴 쉽기 때문일까. 남의 눈에 비친 나에 너무 집착 서울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명품 백에 들어가게 생겼다. '3초 가방' '5초 백' 같은 비아냥에도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너도 나도 명품'이 넘쳐나는 한국은 이미 '명품 공화국'이다. 들었다면 명품 백, 입었다면 명품 옷, 마셨다면 명품 술이다. 빚까지 얻어 방방곡곡 명품 사냥에 나서는 명품 중독자들이 산지사방에서 극성을 부리는 통에 명품 포화상태로 바야흐로 '명품 빅뱅' 시대를 맞고 있다. 여기저기 명품이니 진기해야 할 '진품'이 흔해빠진 '하품'으로 전락하는 건 자연스러운 상대성의 법칙이다. '김 가(家) 아니면 장이 안 선다'는 말처럼 명품 안 팔면 백화점이 안 되는 판이다. 이런 한국인의 유난스러운 명품 패션 열풍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첫째는 자기과시욕이다. 사람의 정신적 내면보다는 겉모양부터 우선 남보다 좋아야 한다는 강박증이다. 배고픈 건 참아도 남의 명품치레는 못 참는 '1등 경쟁 시샘'은 분수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혼마저 군중심리로 내몬다. '정신의 부가 진짜 재물'이라는 그리스 격언은 말 그대로 저 먼 나라 얘기다. 둘째는 사치(奢侈) 본능이다. 사치의 사(奢)자는 사람(者)이나 사물이 크게(大) 부풀려진 모습이다. 치(侈)자도 사람(人)이 스스로 자기 것이 많아(多) 남을 깔본다는 데서 교만하다, 과분하다는 뜻으로 진화했다고 한다. 중국 진(秦)나라 재상인 여불위(呂不韋)가 선진(先秦)시대의 학설과 역사적 사실ㆍ설화를 모아 편찬한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아끼지 않는 게 쓰는 것(非愛其費)'이라며 애착과 소비를 반대 개념으로 봤고 한비자(韓非子)는 '많이 쓰는 게 사치(多費謂侈)'라고 했다. 명품만 갖추면 명인(名人)이 아니라 속 인품이 높아야 명인이다. 과연 명품이 뭐기에 과시욕과 사치성의 허세를 부추기는가. 명품은 오직 '유명한 물건이나 작품'일 뿐 명품 소지자가 곧 명인일 수는 없다. 품(品)자도 입(口)이 셋이니 여러 층의 사람이 모였다는 뜻이라는데 명품으로 허장성세(虛張聲勢ㆍ실력이나 실속은 없으면서 큰소리치거나 허세를 부림)하는 사람들만 모였는가. 불국선사는 "재물을 쓰는 데도 길(道)이 있어 군자는 재물을 아낀다"고 했다. "불필요한 물건을 사면 필요한 물건을 팔게 된다." 이는 절약정신을 강조한 벤저민 프랭클린의 명언이다. 정신적 부가 진짜 귀중한 재물 빈 수레가 더 요란하듯 속이 공허할수록 겉은 더욱 요란해진다. 이런 외화내빈(外華內貧) 현상은 그래서 소비자심리학의 핵심이다. 명품이 누구나 즐기는 과시와 사치의 도구로 가치의 진기성마저 잃은 한국 시장에서 톡톡히 재미를 보는 세계 명품업체들이 유독 한국에서만 기부에 인색한 건 참 묘한 아이러니다. "한국이 요즘 왜 이러니?"라는 명품업체들의 비아냥을 한국의 명품 마니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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