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서비스는 국민의 건강과 행복을 지키기 위한 필수재이다.
이러한 이유로 모름지기 민주 복지국가라면 모든 국민에게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를 보장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 마련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국민의 기본적 의료욕구 충족에 중점을 두고 규제 중심의 보건의료서비스 산업정책을 펴온 것은 이러한 기본 책무 완수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그 결과 비교적 적은 국민의료비 부담으로 전체 국민에게 일정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보장하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규제와 보호 중심의 정책은 우리 의료서비스 산업이 다른 산업 분야와 선진국에 비해 경쟁력 측면에서 매우 취약한 산업구조를 노출하게 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의료시장의 경쟁 제한으로 인한 독과점적 구조, 자본구조의 영세성, 연관 산업과의 낮은 연계 수준, 국민 기대와의 괴리 등 취약성을 보이게 된 것이다.
물론 의료서비스산업은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필수적인 기반산업으로서 정부의 일정한 규제와 보호아래 작동돼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민경제를 구성하는 주요 서비스산업이며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미래 산업이라는 점 또한 간과돼서는 곤란하다. 의료서비스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4%를 차지할 만큼 가장 규모가 큰 산업의 하나로 지속적 성장산업이며 또한 전체 보건의료산업 가치사슬(value chain)의 중심으로 의료서비스 생산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보건산업 제품 및 기술 소비의 주체로서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
단일산업으로는 현재로서도 고용규모가 큰 분야이면서 향후 양질의 고용창출 잠재력이 매우 크다는 점도 주목돼야 한다. 현 정부가 의료서비스ㆍ의약품ㆍ의료기기산업 등의 의료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의료서비스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 온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시의적절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의료선진화 정책 중 의료 공급자 간의 경쟁을 촉진하여 다수의 의료소비자에게 더욱 큰 편익을 제공하도록 하기 위한 규제 개혁은 관련 의료서비스 공급자 단체 및 일부 시민사회의 반대에 직면하여 별다른 결실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에서 제출한 의료법 개정안의 경우 해외환자 유치를 위한 규제완화, 병원 부대사업 범위 확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국회에서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 향후 영리법인 의료기관 개설 허용 등 경쟁제한 규제완화는 더 추진될 필요가 있으나 이념적 논쟁만이 있을 뿐 생산적인 토론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국민의 생명과 건강권의 보장을 위해 공공성과 형평성이 강조되고 특유의 경제적 특성 때문에 의료서비스에 대한 광범위한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이론이 없다. 그러나 규제 목표를 효과적ㆍ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없는 불필요한 규제는 시장경쟁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반드시 정비돼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국민 및 소비자 후생을 극대화하고 동시에 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민간 위주로 구성된 의료서비스 공급체계하에서는 민간의 창의성과 자발성이 잘 발휘될 수 있는 의료체계가 더욱 필요하다.
지금 우리 의료서비스산업은 질적 성장과 퇴보의 기로에 서 있다. 규제개혁을 통한 경쟁 원리 정착과 자원의 효율적 활용, 그리고 소비자 편익 증진은 투입 요소의 양적 증가와 규제에 기대어 왔던 기존 의료서비스 산업정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소망스러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의료서비스의 공공성과 형평성 보장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또는 일부 훼손이 되더라도 대다수 국민의 후생 수준 증진이 그 훼손을 보상할 만큼 큰 경우에는 과감하게 개혁해 나가야 한다. 의료보장을 강화하여 서비스 표준을 높이면서 의료의 공공성과 형평성을 더욱 잘 보장하고, 한편으로 고품질 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소비자 중심의 효율적ㆍ반응적 의료공급체계를 구축하는 일은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