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보다 손실 볼때 충격더 커 재판 당사자의 심리도 이해할만
어떤 가게에서 손님이 현금으로 물건을 살 때는 1만원을 받고 신용카드로 살 때는 1만1,000원을 받으려고 할 때, 가게 주인이 손님들에게 1,000원의 차이를 알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가격을 1만1,000원으로 표시하고 나서 현금으로 구입하면 1,000원을 할인해준다고 말하는 방법이고, 두 번째 방법은 그 반대로 가격을 10,000원으로 표시하고 나서 신용카드로 구입하면 1,000원을 더 내야 한다고 말하는 방법이다.
두 가지 방법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실제로는 첫 번째 방법으로 표시할 때보다 두 번째 방법으로 표시했을 때에 현금으로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득과 손실이 객관적으로 동일한 양이라고 하더라도 이득을 얻을 때 받는 만족감보다 손실을 입을 때 받는 심리적 충격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손실은 이득보다 2.5배 정도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고 한다.
지난해 우리 법원에서는 상반기에 이어 민사재판에서의 구술심리를 정착시키기 위한 하반기 워크숍를 가진 바 있다. 이 워크숍에서는 민사재판부의 재판장들이 원고, 피고를 맡아 실제 재판처럼 역할을 해보는 역할극 순서가 있었다. 평소에 법대 위에 앉아서 재판을 하던 판사들이 원고와 피고를 맡아 하는 역할극은 담당했던 판사들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다른 판사들에게도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다.
역할극에서 우리가 법정에서 많이 보던 풍경들이 판사들에 의해 재현됐다. 원고가 피고에게 갚을 돈이 있으면서도 돈을 갚지 않으려고 약간의 거짓말을 했는데 피고는 이 점을 들어 원고를 고소까지 했던 모양이다. 역할극에서 원고는 돈을 주지 않으려 한 자기의 처신은 생각하지 않은 채 피고가 자기를 고소하여 수사를 받게 한 데 대한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고, 피고는 사실을 부풀려 원고를 고소한 자기 처신은 생각하지 않은 채 원고가 자기를 속이려 했다는 점에 분노하고 있었다.
민사재판에서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못한 경우도 있지만 재판에 이르기까지 양쪽 당사자 모두 사소한 실수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다. 이럴 때 당사자들은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은 채 상대방 행동의 부적절함을 지적하고 분노하면서 감정을 쉽게 삭이지 못해 분쟁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못하는 광경을 법정에서 자주 봐왔다. 고백하자면 지금까지 재판 중에 이러한 광경들을 접하면서 나는 재판 당사자들의 이기적 주장에 실망하고 신뢰감이 부족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그런데 판사들의 역할극에서 판사들이 대신하는 재판당사자의 주장과 하소연을 접하면서 불현듯 현금과 신용카드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의 사례가 떠올랐다. 동일한 양이라도 이득보다 손실을 더 크게 받아들이는 소비자들의 심리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점보다 자신에게 불리한 점을 더 불쾌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재판 당사자들의 이기적 주장에 실망한 것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심리를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성숙하지 못한 자세가 아니었을까.
이제 더 열린 시각으로 재판 당사자들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재판 당사자들의 주장, 얼핏 보기에 다소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는 주장이라도 어쩌면 사람의 심리적 경향상 자연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한층 더 여유롭게 재판당사자의 처지와 주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아가 재판 당사자들에게도 본인의 행태나 상대방의 행태가 그다지 다르지 아니하다는 점을 들어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도록 설득할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