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20년을 준비해 이제서야 애경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사업 플랫폼(기반)을 만들었다는 생각입니다. 생활용품ㆍ항공 부문, 화학 부문, 유통ㆍ부동산개발 부문 등 3개 부문의 사업구조와 발전기반을 갖춘 게 그것입니다. 오래 준비해 토대를 만든 만큼 앞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채형석(48ㆍ사진)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은 지난 25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플랫폼’이라는 단어를 유난히 강조했다. 제주항공으로 저가항공시장에 가장 먼저 진출하고 삼성테스코와 현대백화점 등 쟁쟁한 경쟁업체들을 따돌리면서 삼성플라자를 깜짝 인수하는 등 급속도로 사업을 확장,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과 달리 이제 겨우 더 나아갈 수 있는 사업구조와 발전 토대를 갖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애경의 도약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듯하다. 장영신 그룹 회장의 장남인 채 부회장은 생활용품ㆍ화학 등 2개 사업 분야를 유통ㆍ항공ㆍ부동산개발사업으로 확대하고 이를 3개 사업 부문으로 묶어 지난해 말 새로운 도약비전을 발표했다. 채 부회장은 “각 사업 부문이 앞으로 5년 이내에 20%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면서 오는 2010년대 초ㆍ중반쯤 유통업계 3강 진입과 함께 회사규모를 현재 3조4,000억원에서 10조원까지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애경그룹의 자산은 실제로 최근 3년간 연평균 32% 늘었고 매출액은 25% 신장이라는 높은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1~2년 동안 분당삼성플라자와 코엑스 면세점 인수, 저가항공산업 진출, 초대형 디벨로퍼(부동산개발업체)인 AMM자산개발 설립 등 인수합병(M&A) 및 신사업 진출이 두드러집니다. 신규 투자를 자제하고 있는 많은 기업들과는 다른 행보인데요. ▦애경만의 노하우를 살릴 수 있는 사업들이라고 자신합니다. 모두 애경의 미래를 책임질 사업들로 부동산개발업은 고용창출효과가 뛰어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유통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고 저가항공산업은 먼저 진출한 만큼 시장선점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경영자로서 항상 뭘 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하는데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만 하자’는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2006년 인수한 삼성플라자를 비롯해 현재 운영 중인 면세점 사업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요. ▦유통업의 특성상 새로운 기업이나 매장을 인수하면 색깔을 바꿔나가는 일정 기간의 리뉴얼 작업이 불가피하다 보니 아직도 리뉴얼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삼성플라자는 이제 인수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만큼 우리가 본격적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시기는 내년 초부터입니다. 더욱이 2010년 삼성플라자 옆에 복합쇼핑몰이 완공되면 분당 지역 랜드마크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판교신도시가 들어서면 신규 고객이 늘어나면서 매출도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면세점 사업 역시 올 3월 시작한 인천공항 향수ㆍ화장품사업이 당초 기대치를 웃돌고 있어 2~3년 후에는 효자노릇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유통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내년 3월까지 애경백화점과 AK면세점ㆍ삼성플라자 등을 모두 아우르는 CI(기업이미지통합) 작업도 완료할 계획입니다. -최근 일부 대기업들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유통 부문을 매각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한데요. 새로운 M&A 계획은 없으신지요. ▦인수제안이 들어오면 검토는 하겠지만 애경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지 먼저 판단해봐야 합니다. 물론 아직 제안도 받지 않았고요. 그리고 그룹의 새로운 주력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부동산개발과 유통ㆍ항공의 수익성을 높이는 등 안정적인 운영에 힘을 쏟는 게 지금으로서는 더 중요합니다. 다만 삼성플라자 인수 때도 그랬듯 최종 결정은 주주들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할 생각입니다. -제주항공을 설립해 저가항공시장에 뛰어든 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 항공사들도 잇달아 이 시장에 진출하면서 경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대응전략은 무엇입니까. ▦저가항공사 설립이 늘어나면서 경쟁이 심화되고 있지만 현재 국내선 운영만으로는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입니다. 최근 설립된 저가항공사들 모두 국제선 진입을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제주항공은 7월부터 국제선 부정기편 취항을 정부로부터 승인받은 국내 유일의 저가항공사입니다. 선발주자로서의 선점효과를 최대한 이용해 먼저 일본ㆍ중국 등 근거리 노선으로 수익을 창출한 뒤 올 연말 정기노선 운항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이를 토대로 내년부터 국제선 정기노선의 운항이 가능해지면 충분히 흑자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고유가 상황도 가격경쟁력이 무기인 저가항공사에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제주항공의 유류비가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연초 20%대에서 5월 말 현재 30%대로 급증했으며 지난해와 비교해봐도 약 25%가량 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제주항공은 7월부터 국내선 요금을 현재 기존 항공사 대비 70% 수준에서 80% 수준으로 조정할 계획입니다. 또 최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국제선에서만 시행돼 오던 유류할증제를 국내선에도 도입하기로 한 만큼 제주항공도 이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대형 디벨로퍼인 AMM자산개발을 출범시켜 본격적으로 부동산개발사업에 뛰어드셨는데요. 앞으로의 사업전망과 계획을 말씀해주십시오. ▦AMM자산개발에 모건스탠리와 군인공제회가 참여한 것은 그만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특히 모건스탠리가 합작형태로 국내에 진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앞으로 추구하는 부동산개발방식은 개발사업지에 복합쇼핑센터 등을 조성해 애경의 유통 부문이 운영을 맡게 되는 형식입니다. 부동산개발사업은 미국이나 일본에서 미래산업으로 통하는 성장잠재력이 큰 분야로 앞으로 애경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사업 중 하나입니다. 앞으로 3년 내 국내 부동산개발의 리더로 도약하고 5년 안에는 중국 등 해외시장에도 진출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고유가와 고물가ㆍ저성장으로 경기가 위축되면서 기업 경영상황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입니다. 하반기 경영전략 및 경기전망은. ▦물론 경기가 좋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단순히 나쁘다고만 말할 수 없는 게 경영자입니다.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합니다. 그 속에서 사업을 하고 성과도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내년 하반기쯤에는 내수경기가 풀리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어렵다고 단순히 경비절감 등에 치중하기보다는 적절히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중장기 로드맵을 착실하게 진행해나갈 계획입니다. ◇약력 ▦1960년 서울 ▦1979년 고려고 ▦1983년 성균관대 경영학과 ▦1985년 미국 보스턴대 경영대학원 MBA ▦애경산업㈜ 입사 ▦1986년 애경유지공업(애경백화점) 대표이사 ▦2001년 애경그룹 부회장 ▦2006년 애경그룹 총괄부회장
■ 애경 '변신' 20년 주기론 |
70년대 화학·90년대 유통 진출
2010년대 '재계 20위권' 비전 애경의 사업구조 변천사를 보면 공교롭게도 20년 주기로 대변신이 이뤄진다. 지난 1950년대 생활용품 기업으로 출발해 1970년대 화학 분야에 진출했고 1990년대 유통 분야에서 새로운 터를 닦았다. 그때마다 애경의 기업규모 역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최근에는 항공사업에 진출, 새로운 발전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오는 2010년대 매출 10조원을 달성, 재계 20위권으로 도약한다는 비전 역시 20년 주기와 맞아떨어진다. 이 같은 사업변화에 따라 주력사업의 매출비중도 크게 바뀐다. 많은 일반인들은 '애경' 하면 가장 먼저 치약ㆍ비누ㆍ샴푸 등 생활용품을 떠올리지만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불과하다. 화학 부문이 2006년까지 전체 매출의 50%를 차지했다. 또 2006년 전체 매출의 30% 수준이었던 유통ㆍ부동산개발사업 부문이 지난해 화학 부문과 각각 40%씩 차지할 정도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삼성플라자와 코엑스 면세점 사업이 본격화하는 올해에는 유통사업 부문이 화학 부문을 제치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채형석 총괄 부회장은 "앞으로 5년 내에는 유통 부문이, 10년 후에는 부동산개발사업과 항공이 애경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4명의 부회장 협의체 |
부문별 부회장 3명이 책임 경영 애경그룹은 4명의 부회장들이 서로 화합해 발전을 도모하는 독특한 '부회장 협의체' 구조를 갖추고 있다. 채형석 부회장이 총괄 부회장이지만 주로 신사업 분야의 아이디어를 발굴하거나 그룹 사업 전체의 밑그림을 그리는 일에 전념하고 그룹 사업들은 3개 부문으로 나눠 각각 3명의 부회장들이 책임경영하는 체제다. 생활ㆍ항공 부문은 안용찬 부회장이, 유통ㆍ부동산 개발은 채동석 부회장이, 화학 부문은 부규환 부회장이 책임진다. 채 부회장이 자신에게 집중됐던 권한들을 각 부문별 부회장들에게 일임하면서 형성된 구조다. 채 부회장의 어머니인 장영신 회장이 그룹 회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주요 사업에 대해서는 구두보고만 받고 지난 2002년 이후에는 결재도 하지 않을 정도로 채 부회장을 믿고 있다. 부회장 간 협력관계도 돈독하다. 안 부회장은 채 부회장의 경영파트너이자 조언자고 동생인 채동석 부회장과는 10년 넘게 한 사무실을 쓸 정도로 우애가 깊다. 이 같은 협력체제를 토대로 채 부회장은 앞으로 4~5년 내 그룹 매출을 현재보다 3배가량 많은 10조원 규모로 끌어올린다는 전략을 마련했고 그 전략은 이미 실행단계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