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GQ 인터뷰] 빌 그로스 핌코 최고투자책임자

"中 급부상 대응, 경제체제 재창조해야"


“중국 경제의 급부상으로 한국은 과거 전통적 산업 분야를 하이테크(고기술) 및 비제조업 분야로 다양화해 경제체제를 재창조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습니다.” 뉴욕 월가에서 ‘채권 황제’로 불리는 빌 그로스(사진) 핌코(PIMCO)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장기적인 경제발전 측면에서 한국이 중국과 ‘제로섬’ 게임을 벌일 필요는 없다”면서도 이같이 말했다. 중국의 가파른 성장세가 우리 경제에는 유리하겠지만 한국 역시 경제체질의 질적 도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참여정부가 국가 어젠다로 내세운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그로스 CIO는 “후발 주자인 한국이 일본ㆍ홍콩ㆍ싱가포르처럼 지역 내 금융허브의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경쟁국이 수행하지 못한 한국만의 차별화된 핵심 경쟁력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지만 한국 경제의 미래나 글로벌화 노력 등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낙관론을 펼쳤다. 그로스 CIO는 최근 원화 강세에 대해 “한국 제조업의 높은 부가가치 창출 능력과 수출 증가세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 경제의 강점으로 도전에 직면했을 때 발휘되는 한국인들의 역동성과 신속한 회복 능력을 꼽았다. 가장 큰 약점으로는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높은 노동비용을 지적했다. 그로스 CIO가 국내 언론과 한국 경제에 대해 인터뷰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며 인터뷰는 지난 8일 e메일로 이뤄졌다. -전세계적인 신용경색의 파장으로 최근 미국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미 달러화는 다른 선진국이나 많은 개발도상국 통화에 비해 장기적으로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언제까지 외국인 투자가들이 미국의 적자를 보전해줄 수는 없다. 게다가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고 미국 경제는 둔화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외환보유고를 더 효율적으로 투자하기 위해 국부펀드를 설정하고 있는데 글로벌 투자자들은 포트폴리오에서 달러화 자산을 줄이고 위험도가 높은 비달러화 자산의 비중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가능성 등으로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설 가능성은 없나. ▦물론 통화시장은 단기적으로 투기 세력과 투자자들, 각국 중앙은행들의 움직임에 막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통화의 대규모 유출입이 일어나면서 달러 가치도 단기간에 급등락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통화시장은 경제 펀더멘털과 투자 트렌드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달러화의 지속적인 약세를 내다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원ㆍ달러 환율이 경제 펀더멘털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원화 강세는 경제적 요인과 금융시장 요인 모두에서 비롯됐다. 원화의 상승 속도가 빨라 정책적인 우려를 낳을 수 있지만 한국 제조업의 높은 부가가치 창출 능력을 감안하면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이 같은 사실은 최근 한국의 수출 강세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7월 한국의 수출 증가율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20%나 증가했다. 한국 조선업체들의 해외 수주 실적과 달러화 선물환 매도는 최근 원화 강세의 주요 요인이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뒤 외환보유고를 7월 말 현재 2,548억달러로 늘렸는데 너무 많다는 비판도 있다. ▦외환보유고는 약 3개월분의 수입액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경험이다.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9개월분의 수입액과 맞먹는다. 적정 수준을 넘어섰다는 얘기다. 분명 이는 금융 흐름을 고려하지 않은 일이다. 절대 규모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외환보유고를 어떻게 이용하느냐, 외환보유고를 쌓아둠으로써 다른 정책 목표를 희생시키고 있는지 여부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능성은 작지만 일각에서 제2의 아시아 금융위기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도 하는데. ▦또 다른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지난 10년간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경제의 펀더멘털과 구조는 지속적으로 개선돼왔다.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이 낮은 이유로는 첫째, 과거 아시아 금융위기는 기업 및 국가 차원의 대규모 외채에서 비롯됐다. 아시아 국가와 기업들은 자국 통화 가치가 하락 압력을 받으면서 채무를 갚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은 당시보다 국채 발행액이 줄었을 뿐 아니라 외환보유고를 급속히 늘려 막대한 채무를 조기상환하고 있다. 아시아 기업들도 1997년 당시보다 재무건전성이 훨씬 높아지면서 채권 발행이 쉬워졌고 이전만큼 채권을 발행할 필요도 없어졌다. 둘째, 대규모 외환보유고가 대외적인 충격과 국내 경제의 완충 역할을 하고 있다. 셋째, 아시아 투자자들의 자금력과 역내 투자가 커지면서 아시아 국가나 기업들이 발행한 증권 가운데 상당 부분을 특정 국가나 역내 투자자들이 보유하게 됐다. 특히 한국의 정책 당국자들은 시장의 과잉유동성을 완화시키기 위해 주의 깊고도 선제적인 활동을 해왔다. 이 같은 지표들이 금융위기의 반복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포트폴리오 투자는 늘어난 반면 외국인직접투자(FDI)는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우선 높은 수준의 노동비용과 노동시장 경직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한국 경제도 성숙해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통상 성숙된 경제국보다는 개발도상국이 더 많은 기회와 투자수익을 제공하기 때문에 FDI가 많을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늘면서 자산 거품 형성 등 일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어느 국가나 대내적이나 대외적으로 자금원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미국 국채시장에 해외 투자자들이 없다면 지금처럼 경상수지 적자가 막대한데도 성장세를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외국인 투자가는 국제적으로 최고 수준의 수요를 창출하고 자금원을 다변화해 금융시장과 회계, 기업 지배구조 등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외국인 투기세력이 금융시장 불안정을 야기하거나 자산가격 거품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이 같은 문제들은 건전한 금융감독과 회계정책ㆍ통화정책을 통해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한국 은행과 증권사 등의 해외사업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는데 주의할 점은 없나. ▦한국 금융기관들이 운용 시스템과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때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에 맞출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가령 높은 리스크 관리 능력과 철저한 듀딜리전스(due diligenceㆍ기업 인수 때 사전실사처럼 소정의 절차에 의한 사전 조사행위)는 해외시장 진출에 있어 기본적인 요인들이다. 아울러 글로벌 및 지역 내 전문가 도입도 필요하다. -기관투자가의 성장을 위해 정책당국이 고려해야 할 사안은 무엇인가. ▦경제당국은 기관투자가의 발전을 촉진하면서도 이들이 규제범위 안에서 투자를 늘리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즉 주주들의 이익을 최대한 고려하고 투자활동에 대한 투명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 어젠다 가운데 하나로 동북아 금융허브 육성을 제시했다. 글로벌 금융허브로 도약하겠다는 한국의 목표가 달성 가능한 것으로 보는가. ▦일본ㆍ홍콩ㆍ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지역 내 금융허브 달성을 추구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이미 금융 중심지로서의 위치를 구축했다. 이들 국가는 잘 발달된 금융시장, 건전한 금융 및 회계 규제 등을 통해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지금까지 수행하지 않은 차별화된 역할을 찾아내야 한다. 또 이들 다른 시장에 대해 경쟁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핵심 경쟁력을 찾아내야 한다. 그 다음에 금융시장과 회계 등 각종 규제면에서 국제적인 수준을 충족시킴으로써 한국시장에서 거래하는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줘야 한다. -세계 경제하에서 한국의 글로벌화는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평가하는가. ▦한국의 글로벌화는 한꺼번에 종합적으로 이뤄지기보다는 점진적인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글로벌화는 한국 경제에 잠재적인 문제를 제공하는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이익을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글로벌화가 이익과 도전을 동시에 제공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또 장기적으로는 글로벌화로 누리게 될 혜택이 도전 요인을 능가하게 된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한국이 갖는 영향력이 경제력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있다. ▦한국의 국내 금융시장은 아직 발전 과정에 있다. 금융기관 및 투자상품에 관한 최근의 규제완화 움직임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진일보라고 생각한다. -중국 경제의 급신장은 장기적으로 한국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중국과의 관계가 ‘제로섬’ 게임일 필요는 없다. 사실 중국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중국 경제의 가파른 신장세는 한국에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이 직면한 과제는 과거의 전통적인 산업 분야를 하이테크 및 비제조업 분야로 다양화함으로써 경제 체질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무디스나 스탠더드앤푸어스(S&P) 등 국제신용평가기관이 매기는 국가신용등급이 실제 경제 수준보다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인식이 높다. ▦한국 신용등급 위축의 주요 요인은 북핵 문제와 관련된 지정학적 리스크 및 한반도 통일 시나리오의 불확실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가 남북한 간 관계 개선과 5자 간 회담 유지를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 앞으로의 신용등급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경제의 강점과 약점은 각각 무엇이라고 보는가. ▦강점은 도전에 직면했을 때 발휘되는 한국인들의 역동성과 신속한 회복 능력을 꼽을 수 있다. 반면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약점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시장에 대한 조언이 있다면. ▦경제 자유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 빌 그로스는 누구? - 예측력 뛰어난 월가 '채권황제' 최근 증시폭락도 정확히 예견 '주목' 빌 그로스 핌코(PIMCO) 최고투자책임자(CIO)는 30여년간을 '채권 황제'로 군림해온 미국 월가의 거물이다. 그로스가 지난 1971년 설립한 핌코는 세계 최대의 채권운용회사로 무려 6,000억달러의 자산을 굴리고 있다. 뛰어난 예측력과 수익률로 채권평가기관인 모닝스타와 본드마켓 등으로부터 여러 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모닝스타는 그에 대해 "완벽한 투자기술, 시장의 일반적인 전망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증명하며 주주에게 장기간의 걸쳐 높은 수익을 안겨줬다"고 평가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002년 독일 알리안츠가 핌코를 인수하면서 그로스를 붙잡기 위해 2억달러의 목돈을 보장했다고 보도했으나 정확한 연봉과 보너스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로스의 발언 하나하나는 실시간으로 외신에 뜰 만큼 막강한 영향력이 있다. 그는 지난해부터 금리인하 전망에 베팅하면서 핌코의 토털리턴펀드가 올해 상반기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는 굴욕을 맛보았다. 하지만 그는 지난달부터 정크펀드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부실로 인한 증시 폭락 사태를 정확히 예측해 또 한번 주목받고 있다. 그로스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연내 금리인하를 단행하고 미국 경기가 둔화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실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최근 미 국채 수익률이 급락세를 보이고 있다. 그는 우표 투자로도 유명한데 총 8,000만달러 가치를 지닌 우표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6월에도 총 910만달러어치의 영국 우표를 팔아 수익금 전액을 '국경 없는 의사회'에 기부했다. 그는 미국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에서 태어나 듀크대를 졸업했고 UCLA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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