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포럼] 발코니가 살린 소중한 생명

서승직 인하대 건축공학과 교수 전 대한설비공학회 회장


2014년은 인재(人災)로 얼룩진 고통과 아픔의 한해였다. 인재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무사안일의 총체적 부실에서 비롯된 재난(災難)이다. 인재의 근원인 총체적 부실을 혁신하지 못한다면 예고 없이 닥칠 천재(天災)에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이는 원칙도 없고 책임질 자도 없는 무사안일의 국가시스템 난맥에서 비롯된 불법·탈법·무법이 만들어낸 일이다. 경제성장보다도 더 중시했어야 할 안전제일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나날은 마치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부실 시공한 위험한 건물 속에서 사는 것과도 같다.

최근 잇따른 화재로 필요성 입증


재난을 막을 왕도는 오직 유비무환뿐이다. 적재적소에 맞는 관리운영의 책임주체를 포함한 본질적인 안전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안전성의 참 유익을 간과해버린 무지한 정책을 편 경우가 많았다. 최근 일어난 다중이용업소의 화재만 봐도 여실히 증명된다. 피난공간으로써의 발코니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발코니의 방 확장 합법화로 건축양식이 주는 안전성과 친환경적 기능을 당장만을 위한 사용면적 증가와 바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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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발생한 일산 5층 상가건물화재의 "테라스 덕분에… 80여명 살았다"는 언론기사와 또 강남 행복요양병원 화재는 발코니와 테라스의 화재대피 실효성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현행 다중이용업소의 피난발코니 설치규정인 0.68(1.5×1.5m)평의 대피공간만 확보했다면 소중한 생명을 구하지 못했을 것은 자명하다. 건축법 시행령 제2조에서 "발코니란 건축물의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완충공간으로서 전망이나 휴식 등의 목적으로 건축물 외벽에 접해 부가적으로 설치하는 공간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일산의 상가 화재는 5층 테라스가 발코니와 같은 완충 공간 역할을 했기에 소중한 생명을 살린 것이다.

발코니는 원래 서양건축에서 안전성과 편리성을 위해 발전된 전통건축양식이다. 우리는 2005년 발코니 구조변경 합법화로 건축양식의 특성을 송두리째 없애버렸다. 발코니는 화재시 유일한 대피통로가 되지만 위층과 아래층의 연기와 화염확산을 지연시켜 초기 대피가 가능한 유일한 생명보존 공간이다. 통상 화재피해의 75% 이상이 연기(스모크 또는 가스)에 의한 것을 감안할 때 안전대책 없는 발코니 확장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 수 있다. 발코니 확장 대안으로 규정한 불과 1평도 안 되는 대피 공간은 화재시 무용지물임을 깨달아야 한다.

안전 위해 확장 막고 기능 살려야

또한 발코니는 처마 역할을 하면서 자연환경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는 친환경적인 건축시스템이다. 계절에 따른 일사량의 조절과 공기전달 층간 소음을 차단해주는 역할도 한다. 그리고 외부와 완충공간으로써 겨울에는 창가의 차가운 냉기 유입과 결로(이슬 맺힘)를 막아 주고 여름에는 뜨거운 복사열을 차단해 에너지 절약에도 유익하다. 공동주택 화재시 대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발코니뿐이다. 발코니 확장으로 화재위험에 노출된 채 살고 있는 공동주택은 위험천만하다. 다른 안전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발코니의 특성은 반드시 되살려야 한다. 어찌 재난 위험이 발코니뿐이겠는가. 늦었지만 국민을 보호하는 일은 만연된 무사안일에서 비롯된 부실시스템의 난맥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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