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지원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더 잘할 수 있는데…." 싱가포르에서 만나는 우리 기업인들에게 심심찮게 듣는 말이다. 얼마 전 만난 싱가포르 유수의 기업 관계자도 우리나라 은행의 금융 지원을 받아 한국에 투자하려 했으나 복잡한 절차 때문에 신청을 포기했다고 전했다. 경직된 금융제도가 기업들의 해외 경쟁력과 외국투자 유치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금융개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시아 외환위기 이래 금융 선진화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제기됐고 역대 정부마다 금융개혁 의지를 피력해왔다. 그럼에도 왜 우리 금융은 제자리를 걷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가. 세계적인 금융허브로 성장한 싱가포르에서 답을 찾아보자.
정부의 육성책에 힘입어 단기간에 금융허브로 도약한 싱가포르는 오랫동안 우리 금융허브 실현의 롤모델로 꼽혀왔다. 싱가포르는 일찍이 금융 자유화로 해외 금융기관들의 진입장벽을 낮췄다. 주식시장에 투자된 자금은 자본차익에 대한 세금을 면제해주고 금융상품 수수료 수익에도 낮은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리스크 관리, 자산운용 등의 틈새시장을 집중 육성했다. 그 결과 싱가포르 금융은 국내총생산(GDP)의 12.5%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으며 불안한 홍콩 정세까지 겹쳐 입지가 더욱 견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싱가포르처럼 우리도 금융규제를 대폭 완화해 금융사들의 제약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규제 완화가 초래할 소비자 피해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싱가포르는 시장 진입에 대한 빗장은 풀어주는 대신 사후 관리감독을 강화해 금융사의 부당이익 취득 예방에 주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1년 도입한 '금융자문업자법'이다. 금융당국은 금융사가 상품을 판매할 때의 경영현황, 투자 리스크, 수수료 등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소비자에게 부적절한 상품을 추천하지 않도록 감독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과도한 마케팅이나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힘쓰는 것이다. 금융당국과 금융사 간 수평적 소통도 배워야 할 점이다. 금융감독 기관인 통화청은 1~2주에 한 번씩 금융사들과 만나 애로사항을 파악하고 있다. 감독기관과 금융사 간 이해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는 것이다. 정부와의 긴밀한 소통은 금융당국에 대한 신뢰를 높여주는 싱가포르의 최대 경쟁력이다. 반면 우리는 금융당국과 금융사 간의 소통이 쌍방향이 아니며 감독기관과 금융사 간 상호 이해에 대한 접점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해외 금융사 유치를 위해서는 금융사와의 원활한 소통도 제도개혁 못지않게 중요할 것이다.
물론 금융당국의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금융사들의 해외영업이 뒤처진 것은 대출이나 투자 타당성에 대한 심사분석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최근 탄력을 받고 있는 금융개혁 논의에 싱가포르의 조언이 좋은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