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축구, 이제는 즐길 때다


한국 축구가 어렵사리 '2014 브라질 월드컵'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까딱 잘못했으면 내년 브라질 월드컵은 남들만의 축제가 될 뻔했다. 국민은 최근의 국가대표팀 경기를 보고 '색깔 없는 축구' '뻥 축구' '과거로 돌아간 것 같다'고 평가하고 있다. 아시아 최종예선 정도는 가볍게 통과해야 한다고 믿어온 우리 국민에게는 지난 18일 이란전 패배를 포함한 최근의 실망스러운 성적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현직 프로축구팀 감독인 필자도 국가대표팀 양 측면 수비수가 경기마다 바뀌는 것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해할 때가 있었다. 돌아보면 최강희 대표팀 감독도 '시한부'감독으로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월드컵 8회연속 진출 대위업 달성

브라질 월드컵은 내년 6월12일 개막한다. 월드컵을 1년 남긴 시점에서 대표팀에 바라는 것은 '즐기는 축구'다. 선수들이 즐기는 축구, 국민이 즐기는 축구가 그것이다. 대표팀은 최종예선에서 즐기는 축구를 하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스페인식 축구'를 표방하며 대표팀을 차근차근 다져오던 조광래 감독이 갑작스럽게 경질되고 새로 온 최강희 감독은 임기가 언제까지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미 비극이 벌어진 상태에서 월드컵 본선행 좌절이라는 더 큰 비극을 피하기 위한 축구를 해야 했다. 영문도 모른 채 감독이 경질되고 또 영문도 모른 채 선임되는 촌극 속에서 애당초 '재미있는 축구'는 기대하기 힘든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지금 한국은 8회 연속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상태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 유일무이하고 세계 차원으로 범위를 넓혀도 6번째라고 하니 인정받아 마땅한 기록이다. 본선 무대는 최종 예선에서의 굴곡을 깨끗이 잊고 대비해야 한다. 물론 최종 예선에서 보인 미흡함들을 되돌아보며 개선점을 찾아가는 것도 좋지만 월드컵을 축제로 받아들이는 성숙된 자세가 필요하다. 축제는 즐기는 게 맞다. 이 같은 자세에서 나오는 축구가 국민에게 흥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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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0년도 지난 일이 돼버렸지만 2002년 얘기를 꺼내고자 한다. 당시 필자는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 수석 코치로 국가대표팀에 몸담았다. 히딩크 감독은 대표팀을 월드컵 4강으로 이끌며 지금도 국민에게 칭송되고 있지만 당시 그도 처음에는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평가전에서 유럽 강호인 체코에 0대5로 지면서 '오대영'감독이라는 오명까지 썼었다. 그래도 축구협회는 대표팀에 신뢰를 보냈고 본선에서 4강이라는 기대 이상의 결실을 봤다.

축제로 즐기는 성숙한 자세 갖기를

최강희 대표팀 감독이 물러난 후 새 감독 선임을 놓고도 진통이 많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홍명보 감독은 이 시기에 대표팀 감독을 맡기에는 아까운 인재라는 생각이 있다. 월드컵 본선을 눈앞에 둔 시점이 아니라 대표팀을 처음부터 꾸려갈 여건이 될 때 홍 감독이 사령탑에 앉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어느 감독이 지휘봉을 잡게 되든 필자도 한국 축구를 응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즐기는 축구를 펼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히딩크 감독은 필자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성인 대표팀 감독은 선수를 기른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활용하느냐 여기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은 결코 자원이 나쁘지 않다. 감독은 이들의 흥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 눈은 날카롭다. 선수가 즐기는 축구를 해야 국민도 월드컵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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