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대한민국, 새로운 도전의 시대](2부 1·하) 자동차

가격 아닌 품질·브랜드 파워로 경쟁하라



“관세철폐가 된다고 해서 수출이 원하는 대로 저절로 늘어난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미국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능력과 자격을 갖춰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과실을 따낼 수 있습니다. ” (김기찬 가톨릭대학교 교수) 관세 2.5% 철폐로 3,000㏄ 미만 차종에서 2억달러 이상 경비절감, 대미 자동차 수출 8억달러 증가, 오는 2018년 미국시장 점유율 7% 달성. 산업연구원이 한미 FTA로 예견해본 대미 자동차 수출의 장밋빛 전망이다. 한미 FTA는 관세장벽이 제거돼 한국차의 대미 수출여건을 유리하게 변화시킨다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무관세가 곧 수출증대’로 연결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자동차는 단지 가격만 싸다고 해서 소비자가 찾는 상품이 아니라는 것. 품질과 브랜드 파워가 뒷받침되지 않는 싼 차는 싸구려의 다른 표현이란 얘기다. 또 싼 차는 많이 팔아도 얼마 남지 않는다. ◇2.5%보다 브랜드 파워를=지난 2004년 4월 한-칠레 FTA가 발효됐다. 이후 자동차의 칠레 수출은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FTA 발효 이후 연평균 자동차 수출 증가율은 무려 51.8%에 달한다. 칠레시장 점유율 2위인 한국산 자동차가 FTA 발효 3년째인 지난해 4만8,925대를 판매, 점유율 25.7%를 기록하며 1위인 일본(4만9,762대, 26.1%)을 위협했다. 2004년 당시 칠레의 자동차 수입관세는 6%. 자동차업계에서는 시장규모가 20만대에 불과한 칠레의 경우 6%의 관세철폐는 한국차에 상당한 수준의 가격경쟁력을 안겨준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와 기아차를 합쳐 3만대 내외를 수출하고 있다”며 “딱히 양사에서 영업조직을 바꾸거나 프로모션을 강력하게 벌이지는 않았다”고 밝혀 관세철폐 효과가 컸음을 시사했다. 미국시장은 변방인 칠레시장과는 완전히 다르다. 전세계의 명차 브랜드들이 자웅을 겨루는 ‘자동차시장 1번지’이자 단일 지역으로 규모가 가장 크다. 단지 2.5%의 관세철폐로는 승산을 장담하기가 힘들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 시각이다. 김학주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업종 보고서에서 “한미 FTA 협상 타결의 득실을 따져보면 내수에 있어서는 불리할 수 있고 수출에 있어서는 큰 혜택이 없어보인다”고 내다봤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에 따르면 3,000㏄ 미만 차급의 2.5% 관세가 즉시 철폐될 경우 대당 300~400달러의 가격인하 효과가 생긴다. 원화로 환산하면 30만~40만원에 그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2.5% 관세철폐 효과를 과장하기보다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이를 계기로 한국 자동차가 브랜드 파워를 한층 높여 미국시장에서 일본차와 대등한 지위까지 올라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는 “덤핑이나 재고처리를 해서 수출물량 맞추기를 하는 구태의연한 방식으로는 한국차가 미국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며 “한미 FTA를 어떻게 이용해 이득을 볼지 망원경이 아니라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며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기만성 픽업시장=지난해 미국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는 79만6,000대가 나간 포드의 F-픽업이다. 그 다음은 GM의 실버라도. 역시 픽업트럭으로 63만6,000대가 판매돼 3.9%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픽업트럭은 1,700만대 규모의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연간 300만대가 팔리는 가장 덩치가 큰 차종. 한미 FTA는 이 픽업트럭의 현행 25%의 수입관세를 10년 동안 2.5%포인트씩 줄여나가 결국 완전 철폐하기로 했다. 김동진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이와 관련, 지난 10일 “(미국 픽업트럭시장에 대해) 당장 결정해야 할 문제는 아닌 만큼 잘 따져보겠다”고 밝혔다. 3일 현대차가 “향후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 25%의 철폐 상황에 따라 장기과제로 타당성 여부를 연구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국내 시장보다 3배나 큰 픽업트럭 시장이 열리는데도 자동차업계가 이처럼 차분한 표정을 짓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취약업종을 의식한 표정관리’라는 지적도 있지만 업계에서는 ‘픽업트럭시장 개방=현대ㆍ기아차의 미국 픽업트럭시장 진출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대ㆍ기아차에는 픽업트럭 생산기술과 노하우가 없다. 김현정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주임연구원은 “픽업트럭은 한국에는 없는 미국 고유의 세그먼트(차종)”라며 “한국 완성차업체에는 축적된 기술이 없다”고 진단했다. GMㆍ포드 등과 경쟁해 미국 픽업트럭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려면 먼저 미국의 독특한 픽업트럭 문화를 꿰뚫어야 한다는 것. 김 연구원은 또 “미국 픽업트럭시장에 본격 진출하기까지는 7~10년이 걸릴 것”으로 추산했다. 다년간에 걸친 연구개발과 품질확보, 그리고 브랜드 파워를 충실히 길러야 한다는 주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픽업트럭시장에 진출하려면 가장 미국적 차종인 픽업트럭을 철저히 이해해야 한다”며 “10년의 관세철폐 유예기간은 어찌보면 연구개발과 품질확보에 길지 않은 기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국 픽업트럭시장에서 일본차는 15%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도요타와 닛산이 각각 툰드라와 프런티어 등을 현지생산하고 있으며 2005년 미국시장에 새로 진입한 혼다의 리지라인, 미쓰비시의 레이더, 이스즈의 i시리즈 등이 판매호조를 보이고 있다. 기아차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픽업트럭시장에 진출한다는 것은 일본차와 한판 승부를 한다는 의미”라며 “치밀한 계획 아래 탁월한 성능과 디자인의 픽업트럭을 개발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마케팅해야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美유통망 원점 재정비 현대차 미국법인은 얼마 전 판매실적이 부진한 현지 딜러망 50여곳에 일제히 경고문을 발송했다. 앞으로 6개월간 시간을 줄 테니 달라진 모습을 보이라는 사실상 최후 통첩이었다. 이는 미국시장을 효과적으로 공략하자면 무엇보다 탄탄한 현지 유통망 확보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대차와 기아차 등 국내 자동차업계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계기로 미국시장의 현지 유통망과 마케팅 전략을 전면 재정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 전역의 딜러망을 새롭게 점검하고 인센티브 제도를 변경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현대차가 무엇보다 신경을 쓰는 것은 미국시장에 첫 프리미엄 모델로 선보인 베라크루즈다. 이 회사는 다음달부터 TV나 신문ㆍ잡지ㆍ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대적인 광고전에 돌입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의 여건이 달라진 만큼 마케팅 전략을 원점에서 다시 짜야 할 것"이라며 "현지 유통시장에 새로운 판도변화를 몰고 오겠다"고 의욕을 불태웠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현재 미국 내 각각 755개, 640개인 딜러 수를 크게 확대하고 독점 딜러의 비중도 대폭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각종 스포츠 행사나 구단 지원을 늘리는 방안도 적극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과거 도요타의 사례를 감안할 때 현재 4%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현대차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한 단계 도약하자면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갖추고 거미줄 같은 현지 유통망 확보가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은 미국 현지시장의 변화와 함께 국내 자동차 유통시장도 대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한미 FTA로 자동차 수입관세 8%가 철폐되는 것을 계기로 해외 덤핑물량과 수입 중고차의 대거 유입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실제 완성차업체들은 자동차 수입관세가 없어지게 되면 미국시장에서 재고처리를 위해 덤핑판매된 신차들이 대거 국내로 역수입될 수 있어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모 완성차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의 쏘나타2.4의 경우 미국 현지 판매가격이 국내 판매가보다 5,000달러 싸다"며 "탁송비 200만원가량을 제하면 300만원이 저렴해 수입상들이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만약 국내 수입업자들이 이 같은 틈새시장을 노려 대거 역수입시장에 진출할 경우 국내 신차시장은 미국산 한국차의 융단폭격을 맞게 된다. 수입업자가 쏘나타 100대를 한국에 들여와 모두 팔았다면 대당 300만원, 모두 합해 3억원의 이익을 그대로 챙길 수 있다. 이 같은 수익성 때문에 수입상들이 너도나도 미국산 한국차 수입에 나선다면 수입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게 된다. 특히 한국차의 경우 국내에서 부품이 완비돼 있어 사후 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도 거부감이 없다. 업계 관계자는 "수입상들이 일부 딜러들에게 더 많은 마진을 주는 조건으로 계약을 해 수입해온다면 시장잠식 속도가 빠를 것"이라며 "미국 현지에서 덤핑판매 물량이 많다면 이 같은 추세는 가속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입차업계도 수입관세 8% 철폐에 따라 중고차를 들여오는 병행수입자들과의 경쟁이 신경 쓰이는 분위기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국내 수입차 등록대수는 4만5,000여대인 데 비해 같은 기간 수입차협회가 밝힌 등록대수는 3만7,000대로 약 8,000대가 병행수입 또는 개인 도입분 등으로 추정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시장은 1,700만대의 거대 시장"이라고 전제한 뒤 "이런저런 이유로 신차와 다름없는 중고차들이 즐비하다"고 설명했다. 신차와 진배없는 중고차를 들여와 훨씬 싼값에 판다면 수입차 공식딜러들의 설자리가 좁아지는 것은 물론 한미 FTA의 이익을 병행수입자, 즉 그레이마케터들이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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