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기쁜 삶의 비결

주성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한 해를 돌아보는 연말은 지나온 삶을 좀 더 멀리 돌아보는 계기도 된다. 동문송년회가 예년처럼 열렸다. 내년이면 개교 50주년이 되는 나의 모교는 한국 최초의 중학교과정 예술학교다. 열다섯도 채 안된 어린 나이에 전공과 씨름하며 치열한 경쟁과 좌절, 자부심 속에서 요란하고 화려한 사춘기를 경험했던 중년들이 모여 전공과 다른 길을 간 친구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자며 동문회의 의미를 역설하고 있었다. 보신각 앞에서 피아노를 친 이종걸의원이나 명의가 된 홍승봉박사, 행복한 아이엄마 손정주주부도 선배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처음 품은 꿈을 이루는 것만이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후배들에게 알려줄 좋은 기회도 되겠다 싶었다.

예술학교에서 내 전공은 성악이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나는 소프라노가 아니라 생물학자가 되고 싶었고, 재학 중 맛본 합창의 세계에 빠져 졸업쯤에는 합창지휘자가 되리라는 꿈을 꾸고 있었다. 몇몇 어른들은 음악을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한국음악계에 막 소개되기 시작한 ‘음악학’이라는 낯선 전공을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 대학에는 지휘도 음악학도 전공학과가 부재했고, 두 가지 모두 연주는 아니니 작곡과로 진학하는 것이 그 길을 가는 답이라고들 했다. 나는 예고 작곡과 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신설된 음악학 전공과정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성악에서 작곡으로, 다시 음악학으로 십대에 이미 전공을 세 번 바꾼 나는 음악학의 세부전공 사이에서도 헤엄치며 돌아다녔다. ‘음악의 역사’가 ‘음악을 좋아한 사람의 역사’를 충분히 설명해주지 못하는 것이 갑갑했던 나는 음악사로부터 예술철학으로 관심을 돌렸고, 현대 한국이라는 특별한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의미를 찾고자 문화인류학으로 시선을 옮겼다. 한국의 시대상황과 가치관에 대한 그 관심은 사십년 동안 학생·교수로 경험한 우리 예술교육의 방법과 만나 지금은 문화예술교육 국책사업의 수행을 관리하고 있다. 음악이라는 큰 틀을 벗어나지는 않았으나 연주와 창작, 연구, 기관운영의 여러 갈래를 더듬어 돌아다닌 나의 이력을 두고 어떤 이는 어찌 그리 전공을 자주 바꾸었냐고 하지만 그저 궁금해지는 것의 답을 찾아간 그 길이 내게는 별로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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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보여준 멋진 이미지를 닮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되묻는 것이 나에게는 관심사였다. 그것은 때로 나를 불안하고 답답하게도 하지만 기쁜 일이 더 많은 내 삶의 비결이었다. 허나 부모가 되고 보니 사정이 사뭇 다르기는 하다. 가엾은 콩쥐보다 엄마와 함께 사는 팥쥐가 되고 싶다던 딸아이가 어느새 자라서 이 비결을 전수받고 조마조마 내 맘을 졸이게 한다. 방황을 응원하는 엄마, 이번에는 그것이 내가 도전해야 할 새 목표인가 싶다.

주성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BR><BR>주성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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