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자신의 눈과 한글을 맞바꾼 왕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 고유의 글자를 만들겠다는 뜻을 세우고 끊임없이 밤낮으로 공부를 한 탓에 시력이 약해져 요즘으로 치면 2급 시각장애인 정도로 앞이 보이지 않았어요. 조선시대에는 왕이나 재상은 물론 평민에 이르기까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크지 않아서 더불어 함께 살아간다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어요. 장애인을 구분해서 격리해 놓고 동정하기 보다는 동행하는 사회였던 것이죠.”
22일 관악고 시청각실에는 90여명의 학생들이 정창권(사진) 교수의 고인돌 강좌 ‘마이너리티 리포트 조선’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고인돌(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과 본지부설 백상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기획·운영하고 KT가 후원하는 청소년과 시민들을 위한 고전인문 아카데미로 올해 3회째다. 이날 강좌는 영등포평생학습관의 지역학교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올해 고인돌 마지막 강좌이기도 한 이날 강의에서 정 교수는 ‘세종시대 척추 장애인 재상 허조’를 주제로 조선시대의 장애인 복지제도와 사회적 인식에 대한 이야기로 강의를 펼쳐나갔다.
“조선시대의 사회적 풍토는 장애인을 무시하고 깔보지 않았어요. 평생 극복할 수 없는 장애가 아니라 언젠가는 낫게 될 병으로 간주한 것이죠. 심청전에서 마지막에 심청이 아버지 심봉사가 눈을 뜬 것은 기적이 아니라 병이 다 나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대목입니다.”
정 교수는 조선시대에 능력이 있는 자는 자신의 뜻을 펼치는 데 신체적인 장애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 시각장애인은 관현 맹인이라는 관직으로 궁궐에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점복가로 점을 치면서 자신의 타고난 기량을 펼칠 수 있었으며, 심지어 궁형을 당한 자는 문지기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어요.”
그는 관료층으로 대표적인 인물인 척추장애인으로 세종대에 좌의정에 올랐던 허조의 사례를 통해 능력이 있는 인재를 두루 등용했다는 점을 설명해 나갔다. “허조는 태조·정종·태종·세종 등 네 임금을 모시면서 법전을 편수하고 예악을 정비한 사람입니다. 요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죠? 그 밖에도 간질을 앓았던 권균, 왼쪽 눈을 실명한 기정진, 등이 굽은 조성기 등은 신체적인 장애를 딛고 왕을 훌륭히 보필했던 인재들이었습니다.”
정 교수는 “장애인이 불구라는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한 시점은 일제 강점기 이후이며, 그들을 격리하기 시작한 것은 88올림픽을 준비하던 시기”라고 강조하면서 “요즈음 우리는 장애자에 대한 배려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사회로부터의 격리와 동정을 보내는 것이 전부는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다리가 불편한 사람을 부축할 때 우리의 걸음걸이는 느려지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한다”면서 “장애가 있는 사람과 아무런 거리낌없이 이웃으로 함께 살게 된다면 경쟁 보다는 배려, 이기심 보다 인내심을 먼저 떠올리게 될 것”이라면서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학생들은 평소 정규 수업으로는 접하기가 쉽지 않은 주제에 관심을 보이면서 내내 진지하게 강의를 들었다.
한편, 올해 3회째인 고인돌(고전인문학이돌아오다)은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21곳과 서울시 중고등학교 30여 곳에서 12월까지 잇따라 열리고 있다. 공공도서관과 학교를 찾아가 인문학의 항연을 펼치고 있는 고인돌 3기 프로젝트를 통해 1만5,000여명의 시민들이 풍요로운 인문학적 교양과 지식을 쌓을 수 있는 평생교육을 누리는 기회를 얻었다./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