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사회 이슈 편승한 기획소송 넘쳐난다

개인정보 유출… 골프장 입회금 반환… 금리 담합…

소비자 피해구제 긍정적이지만 '아니면 말고'식 소송남발 부추겨

미흡한 준비로 승소 사례 드물어… 변호사 자기 배만 불리기 지적도

옥석 가려 신중하게 접근해야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개인 회생'이나 '입회금 반환 소송'을 전문으로 수임한다는 변호사 사무실 간판이 눈에 띈다. /조양준기자

#1.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조타운에 자리한 A 법무법인은 요즘 골프장이나 콘도미니엄 등의 입회보증금 반환소송만 전문으로 수임하고 있다. 오랜 기간 골프장 업계에서 일한 임원을 영입하고는 입회금을 돌려받지 못한 회원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 등과 접촉하며 홍보 전선을 넓히고 있다. A 법무법인 관계자는 "월 평균 50~80건의 소송 요청이 들어오고 있어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소송은 수백건"이라며 "3년 전부터 준비해 변호사와 직원 모두 입회금 반환소송에 올인하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2. 올들어 개인정보 유출사태가 연이어 터지자 변호사들은 '대규모 소송인단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온·오프라인 가릴 것 없이 앞다퉈 내걸기 시작했다. 소송인단을 모으는 경쟁이 치열한 만큼 변호사들은 경쟁적으로 수임료를 낮추거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카드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B 법무법인은 "기존과 달리 이번 (카드사 상대) 소송은 유출 매개체가 된 신용평가사와 각 카드사와의 역학 관계를 고려해 피고를 지정하는 등 치밀한 전략을 짜야 한다"는 내용의 '소송전략 및 방향'을 보도자료로 내기도 했다.


최근 들어 개인정보 유출이나 골프장 입회금 반환과 관련한 소송처럼 사회적인 사건이나 이슈에 맞춰 제기되는 이른바 '기획 소송'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이슈가 터지면 변호사들이 피해 구제를 약속하며 적극적으로 고객 끌어모으기에 나서는 모습이다.

실제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이슈에는 어김없이 대규모 기획 소송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초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근저당권 설정비 반환 소송을 비롯해 유해물질 놀이매트 소송, 애플의 위치정보 불법 수집에 대한 위자료 청구 소송,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등 굵직굵직한 논란은 여지없이 기획 소송으로 이어졌다. 대형 포털 사이트에 해당 이슈를 검색하면 각 법무법인이나 변호사 사무실의 홈페이지나 블로그로 연결되는 링크가 많게는 수십개씩 걸려 있다. 일부 사무실은 '파워링크' 등 유료 검색광고도 사용하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 같은 '단타성 이슈' 외에 개인회생 같은 사회 현상도 기획 소송의 대상이다. 서울 서초동 법원삼거리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개인회생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 사무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변호사뿐만 아니라 '개인회생 전문'이라는 간판을 내 건 법무사 사무실도 눈에 띄게 늘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신청 건 당 무조건 얼마에 해주겠다, 신청이 (법원에서) 기각되면 수임료를 다 돌려주겠다는 식으로 당사자에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며 "법원에 '아니면 말고' 식의 신청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변호사들이 기획 소송에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원인으로는 소송 자체의 특성을 꼽을 수 있다. 조광희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개인정보 유출 같이)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면 피해자들 각각의 수임 비용은 낮지만 변호사는 그 돈을 다 모으면 상당한 수임 금액을 얻을 수 있다"며 "변호사와 다수 당사자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법적인 피해 회복을 위해 법률가들이 직접 나서서 피해구제에 도움을 주는 것도 기획 소송의 긍정적인 측면"이라며 "특히 국내는 미국 같은 집단소송제가 도입돼 있지 않아 더욱 그렇다"고 덧붙였다. 집단소송제는 피해자의 대표자가 소송을 제기해 대표자가 승소를 확정 지으면 다른 피해자 대부분도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현재 국내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최근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로 인해 정부가 집단소송제 도입 의지를 밝혔지만 실제 도입까지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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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에 따른 법률시장 불황도 기획 소송을 증폭시키는 촉매 작용을 한다. 한 중형 법무법인 변호사는 "결국 수임 경쟁이 기획 소송으로 이어졌다고 보면 된다"며 "시장 불황으로 (기획 소송은) 특히 젊은 변호사들에게는 수임도 하고 이름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렇게 제기된 기획 소송에서 승소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근저당 설정비 반환이나 옥션의 개인정보 유출 등 소송에서 원고가 이긴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변호사들이 기획 소송을 '수익창출 모델'로만 바라보는 것도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이슈만 터지면 변호사들이 몰려들지만 정작 소송 당사자들은 이들이 어떤 인물인지 확인할 만한 정보가 많지 않은데다 일부 변호사들은 수임에만 정신이 팔려 소송을 주먹구구식으로 이끌어가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굳이 소송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변호사가 당사자를 부추기는 점도 문제다. 아파트 입주민을 부추겨 건설사를 상대로 하자보수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임료를 얻을 수 있는 민간아파트 기획소송에 변호사들이 대거 뛰어들면서 일부 변호사와 브로커가 공공아파트까지 공략한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게다가 소송 이후 성공보수금 두고 변호사와 입주자 간에 '2차 분쟁'을 벌이는 사례도 적지 않다.

골프장 입회금 반환소송의 경우 법원이 반환금을 돌려주라고 판결하더라도 상당수 골프장이 이미 자본잠식에 빠지는 등 재정 상황이 어려운 터라 실제로 입회금을 돌려받는 사례는 드물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획 소송의 '옥석'을 가릴 수 있는 방법이 절실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조광희 변호사는 "기획 소송을 할 때 변호사들이 승소 가능성이나 소송의 의미, 법리 등을 충분히 준비했는지에 대해 당사자들에게 반드시 설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변호사 간에 입찰을 시켜 당사자에게 선택권을 주면 소송 진행도 원활하고 변호사들의 책임도 더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변호사가 직접 권하는 게 아니라 직원이나 사무장이 권하는 소송을 피하고, 다른 변호사 사무실에도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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