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영국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을 5년4개월 만에 처음으로 역전했다. 저유가로 타격을 받은 미 셰일 업계가 생산량을 줄이면서 미국발 원유공급 둔화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글로벌 원유시장에서 미국 유가와 글로벌 유가가 장기적으로 '패리티'(parity·가치등가)를 이룰지 주목된다.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날 영국 런던 ICE선물시장에서 내년 2월 인도분 브렌트유 가격은 전일 대비 24센트(0.66%) 하락한 배럴당 36.11달러로 마감했다. 반면 미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WTI 가격은 33센트(0.92%) 오른 36.14 달러로 마감해 브렌트유 가격을 앞질렀다. 글로벌 원유시장의 벤치마크인 두 제품의 가격이 뒤집힌 것은 지난 2010년 8월 이후 처음이다.
WTI 가격이 상승세를 보인 것은 장기간 이어진 저유가가 셰일 업계에 타격을 입히면서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WSJ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올해 초 하루 960만배럴이던 원유 생산량이 셰일 업계의 감산으로 내년 9월에는 850만배럴까지 줄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글로벌 원유시장의 공급과잉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미국 유가와 글로벌 유가가 장기적으로 가치등가를 이룰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내년 원유 매장량 기준 세계 4위인 이란이 원유 수출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시카고 소재 프라이스퓨처스의 필 플린 애널리스트는 마켓워치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브렌트유 생산은 늘고 반대로 미국 원유 공급량은 떨어질 것"이라며 두 제품의 가격차이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전 세계에서 나타나는 이상고온 현상 때문에 저유가로 고전하는 에너지 업계가 더 힘든 겨울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22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올겨울 기온이 올라가는 이상기후로 국제원유시장에서 수요가 줄어 글로벌 에너지 업계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미국 선물·옵션 시장에서는 내년 국제유가가 최대 15달러까지 떨어지는 데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블룸버그는 내년 WTI가 배럴당 15달러 이하로 내려갈 경우 이를 해당 가격에 팔 수 있는 권리를 매매하는 풋옵션 계약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배럴당 15달러 풋옵션 계약이 증가했다는 것은 1년 후 WTI 가격이 배럴당 15달러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났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