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서로 인정하기

요즘 우리 집 안주인은 '시크릿가든'이라는 드라마에 빠져있다. 1월1일 저녁에도 그랬다. 새해 설계를 하자고 모처럼 안방에서 주안상을 마주하고 앉았지만 안주인은 드라마에 열중이다. 시크릿가든에서는 주인공 남녀의 영혼이 바뀐다. 남자 주인공은 원래 폐쇄공포증이 있어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는데 이날 남자 몸에 들어간 여자 영혼은 거리낌 없이 엘리베이터를 탄다. 순간 다시 영혼이 바뀌어 제자리를 잡자 남자는 공포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혼절한다. 보는 사람을 혼절시킬 정도의 이런 저급한 설정이 지겹지도 않냐는 나의 말에 안주인은 "이 설정은 서로를 알아가고 인정하는 과정을 그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며 '인식을 고급스럽게 하지 못하는 나'에게 오히려 핀잔을 줬다. 여인이 한 남자의 아내가 되면 그때부터 말은 청산유수로 바뀐다. 서로를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은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4대강 사업으로 이어지고 무상급식으로 번졌다. 지난해 10대 뉴스 대부분을 섭렵하는 좌충우돌 술자리였지만 일관된 흐름 하나는 있었다. 서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4대강은 그렇게 되더라도 무상급식만큼은 어떻게 해결될 줄 알았다. 더구나 연말에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 관계자들이 전격 회동하는 걸 보면서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결론은 시장 고발과 예산안 집행 거부였다. 의견이 팽팽히 맞선 사안을 들여다보면 대개 구성원 사이에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외골수 자세가 느껴진다. 무상급식은 그런 점에서 전형적인 사례다. 상대의 주장에 타당한 면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아이들에게 무상급식을 하자는 데 대해 양측의 입장이 같은데도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은 서로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은 죽는다는 강박증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일어난 정말 많은 사건들에서 필요한 것은 서로를 인정하는 일이었다. 나만 해도 드라마에 대한 안주인의 열정을 인정하자 드라마에 대한 깊은 인식세계가 덤으로 따라왔다. 우리는 아직도 지난해에 얽매어 있다. 새해는 이미 밝았는데 영신(迎新)은커녕 송구(送舊)도 못하고 있다. 송구를 위해서라도 새해에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인정하는 복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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