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기+플랫폼+소프트웨어의 생태계
IT 코리아의 대표 주자 삼성전자는 가장 상징적 예라 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2·4분기 실적을 보면 위기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매출감소 속에 주력사업인 IT&모바일(IM) 부문의 영업이익은 4조4,200억원에 그쳤다. 전분기보다 31%나 줄어든 수치다. 글로벌 시장 점유율도 1년 사이 7%포인트나 떨어지며 25%대로 주저앉았다. 앞으로의 전망이 밝은 것도 아니다. 화웨이·레노버·샤오미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의 무서운 성장과 미국 애플의 노골적인 견제가 심해지는 등 경영환경이 갈수록 험난하다. 팬택은 아예 경쟁에서 뒤처진 끝에 두 번째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인터넷 분야는 더 열악하다. 포털 네이버와 모바일메신저 카카오가 국내 강자로 군림하고 있지만 구글·페이스북·트위터에 비하면 우물 안 개구리 신세다. 'B.A.T'로 불리는 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등 중국 인터넷 강자들까지 협공에 나서 우리 기업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텐센트 등은 카카오·CJ넷마블에 지분투자까지 하며 한국 시장을 뒤흔들 태세다.
한국 IT 산업이 어려움에 처한 원인은 복합적이다. 가장 핵심적 원인은 디바이스·소프트웨어·플랫폼이 어우러져 시너지를 내는 IT 생태계의 흐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팔리는 스마트폰 10대 가운데 3대 정도가 갤럭시 시리즈인데도 삼성전자는 모바일 운영체제(OS)에서 후발주자다. 타이젠이라는 독자 OS를 개발했으나 구글의 안드로이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하드웨어에 집중하다 보니 소프트웨어를 챙기지 못한 것이다. 소프트웨어 경쟁력에서 뒤지면 지속 성장을 보장할 수 없는 게 글로벌 IT 업계의 현실이다.
삼성전자가 소프트웨어 인력을 향후 5년간 7만명으로 늘리기로 한 것은 '소프트 주도 기업(Soft Driven Company)'으로의 변신이 지상 과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다크호스로 부상 중인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샤오미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0년 회사 설립 이후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 경쟁력까지 끌어올려 '대륙의 애플'로 성장해 애플·삼성전자를 맹추격 중이다. 샤오미의 독자 OS인 'MIUI'는 불과 4년 만에 이용자가 6,500만명에 달한다.
네트워크와 기기를 연결해 콘텐츠를 소비자에 공급하는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느냐 여부도 IT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다. 영화·음악은 물론 광고까지 동영상 서비스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요즘에는 더욱 그렇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계 최대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인 구글의 유튜브다. 구글은 인터넷 검색·소프트웨어에다 플랫폼까지 장악해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안방에 안주한 탓에 플랫폼 전쟁에서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는 신세다. 김상헌 네이버 대표의 말처럼 "한국만을 대상으로 한 플랫폼은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시대"다.
독일, IT결합한 '인더스트리4.0' 추진
소프트웨어·플랫폼과 함께 집중해야 할 분야가 사물인터넷(IoT)이다. 모든 사물에 인공지능이 접목돼 인터넷에 연결되는 초(超)연결사회를 따라잡지 못하는 IT 업체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사물이 2020년께 260억개로 늘어나고 여기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가 500조원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IoT 시장 선점을 위해 구글·아마존 등이 뛰고 있지만 아직 초기 단계여서 우리 업체들도 늦지 않았다. 준비를 잘하면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
한국 IT 산업의 재도약은 제조업에도 절실하다. 자동차·조선·철강 등 산업 전 분야에 IT가 접목되는 융복합 시대이기 때문이다. 독일은 2010년부터 IT와 제조업을 결합하는 '인더스트리 4.0'을 추진해 흔들리던 제조업을 살려냈다. IT를 활용해 제조업에 자동생산 체제를 구축하고 생산과정을 최적화한 것이다. 독일에서 보듯 IT 산업의 경쟁력이 곧 제조업의 경쟁력이다. 정부가 IT 산업 규제완화와 국내 업체의 역차별 해소 등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