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0월23일] <1223> 비고만 해전


명예혁명과 아이작 뉴턴, 핑크 와인과 네모 선장의 보물창고. 난집합같이 들리지만 이들에게는 분명한 연결고리가 있다. 뭘까. 비고만(Vigo Bay) 해전이다. 직계 혈통이 끊어진 스페인 왕실의 후계구도를 놓고 유럽은 물론 아메리카에서도 전쟁을 치러 인류 최초의 세계대전으로 꼽히는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초기인 1702년 10월 초. 네덜란드 출신 윌리엄 3세를 왕위에 앉힌 명예혁명으로 찰떡궁합을 이뤘던 영국-네덜란드 연합함대에 스페인 북부 비고항구에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운송해온 보물선단이 정박 중이라는 첩보가 들어왔다. 연합함대는 10월23일 여명을 틈타 비고만을 짓이겨 들어갔다. 결과는 압승. 호송선단인 프랑스 함대 15척과 스페인의 대형 보물선 3척, 상선 13척이 나포당하거나 불에 타 가라앉았다. 영국 함대는 얼마나 약탈했을까. 10만~100만파운드라는 설이 분분하지만 일부나마 정확한 기록은 과학자에서 왕립 조폐국장으로 변신한 뉴턴이 남겼다. 약탈한 금과 은 4,512파운드를 넘겨받은 뉴턴 조폐국장은 기쁨에 들떠 1703년 ‘VIGO’라는 부조가 선명하게 새겨진 5기니짜리 금화를 만들었다. 비고만 해전은 전쟁 전체의 승패도 갈랐다. 약탈을 피해 자침을 택한 스페인 보물선에 실려 있던 금은 군자금 용도였기 때문이다. 쥘 베른은 공상과학소설 ‘해저 2만리’에서 잠수함 노틸러스호의 네모 선장이 필요할 때마다 금을 찾아 사용한 장소로 비고만을 그려냈다. 프랑스 편이던 포르투갈은 이 해전 이후 영국 편으로 돌아서 최초의 자유무역협정으로 꼽히는 메수엔 조약을 맺었다. 포르투갈 특산품인 핑크 와인도 이 협정에 따른 교역 활성화 과정에서 태어났다. 승리의 과실에 대한 기억에 취해서일까. 앵글로 색슨의 호전성은 오늘날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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