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의약분업 참회록

박상영<사회부차장>

의약분업제도를 도입한 지 5년이 지났다. 지난 2000년 7월1일부터 시작된 의약분업제는 우리나라 보건의료 문화의 틀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실망스러운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은 준비되지 않은 제도의 태생적 한계를 보여준다. 당시 정부는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국민부담은 절대 늘지 않는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부ㆍ시민단체ㆍ언론은 의료계가 의약분업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천명하자 비판의 칼날을 내밀었다. 전국적으로 의원과 병원이 문을 닫고 폐업을 선택했을 때는 ‘환자들의 목숨을 담보로 제 밥그릇만 챙기려 한다’는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고 대학병원 교수까지 가운을 벗어던졌을 때는 대한민국 지식인의 ‘정체성 없음’에 대한 자조의 푸념을 쏟아냈다. 그때 국민들은 정부를 믿었다. 비용을 더 들이지 않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게 될 것이라는 당국의 말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철학처럼 신뢰했다. 의료계의 반발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이 비판의 강도를 더했던 것도 정부 정책에 대한 믿음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현실은 어떤가. 제도 도입 전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이에 비해 건강보험료 부담은 매년 늘고 임의조제 등 불법 행위는 근절되지 않고 있으며 의약품 유통구조를 투명하게 하겠다는 당국의 의지도 구두선에 그치고 있다. 연간 수조원에 달하는 직접적인 보험진료비 증가에도 불구하고 정책 목적에 근접하는 결과를 느끼기에는 역부족이다. ‘항생제ㆍ주사제 처방 건수는 줄지 않았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정도를 내세울 수 있는 성과라고 친다면 의약분업제는 당장 철폐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부가 의약분업평가위원회를 구성, 미비점을 보완하겠다고 하지만 이제는 솔직히 ‘양치기 소년’의 말처럼 들린다. 정부 정책은 추진력과 함께 일관성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잘못된 정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밀고 나가는 것도 여간 미련스러운 짓이 아니다. 의약분업제도를 도입한 지 5년. 현재의 시스템을 볼 때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그토록 힘들게 도입했고 고생을 하면서 밀고 나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제도 도입 당시 허위보도로 독자와 국민들의 눈을 멀게 한 것에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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