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미술품 감정제도 개선책은 없나] <중>현행 미술품 감정 제도의 문제는?

감정위원 '안목'에 의존 결론 도출<br>의견통일 안될때 시행하는 '과학감정'은 걸음마단계<br>작가별 재료사용 특징등 국가기관차원 DB구축 시급

지난해 11월 '이중섭 박수근 위작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검찰 관계자가 서울중앙지검에서 위작으로 판명된 이중섭 그림을 펼쳐 보이고 있다.

현행 미술품 감정이 어떤지 살펴보자. 화랑 대표들이 주축이 돼 설립해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은 국내 대표적 감정기관 '한국 미술품 감정연구소'. 이곳에서는 오랜 시간 원작과 진품을 접해왔고 진위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감정위원으로 위촉되는데 현재 40여명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감정 요청 사안에 대해 9~12명의 감정위원들로 구성된 감정단이 꾸려진다. 전문가적 안목을 가졌다지만 이들이 '한눈에 딱 알아보는' 것은 아니다. 화풍과 도상 분석에서부터 색감ㆍ형태ㆍ마티에르(질감)ㆍ운필(붓질)ㆍ사용된 물감과 캔버스 등을 세심하게 살피는 과정이 짧게는 2시간에서 수일에 걸쳐 진행된다. 엄중구 미술품 감정연구소 소장은 "감정과정에서 '위작'이라는 의견이 제기되면 감정단 전체가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토론과 의견 조율이 진행된다"면서 "위작 논란을 불러온 '빨래터'(박수근)의 경우 20명의 감정단 중 한 명이 '진품이 아니다'는 의견을 냈고 이에 대한 전체 결론이 내려지지 않아 '감정 보류'로 판정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절차에도 불구, 왜 감정 결과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할까. 무엇보다 감정기관이 탄탄한 권위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안목이 탁월할 지라도 상당수 감정위원들이 상업화랑 운영자 자신이란 점, 그리고 그런 점들로부터 파생되는 문제로부터 자유롭기 어렵기 때문에 전문인력으로서 권위를 인정 받기가 쉽지 않다. 감정위원 자격 제도나 국가 공인이 있으면 신뢰도를 얻을 수 있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외국도 자격제도를 갖추고 감정위원을 임명하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다만 프랑스의 경우 대형 위작 사건이 터질 경우에 한해, 국가가 감정 전문가를 위촉해 대처한다. 일반인들은 '사람의 눈'인 안목 감정보다 과학적 감정 기법을 더 신뢰하는 경향도 보인다. 이중섭 위작 파문이 일었을 때 '과학 감정'이라는 말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작품에 사용된 안료(물감)을 분석해 본 결과 운모 성분이 검출됐고 운모가 함유된 물감은 이중섭 사후에 개발된 것이었기에 위작임이 확인됐다. 과학 감정 기법에는 물감을 확인하는 안료분석, 그림 표면의 이면을 보는 엑스레이 촬영기법, 자외선 촬영기법, 도자기에 주로 사용되는 인광분석,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법 등이 있다. 하지만 과학적 감정 방법이 능사는 아니란 게 미술계 주장이다. 김주삼 삼성미술관 리움 보존연구실장은 "과학적인 조사법일지라도 오차는 존재할 수 있으며 치밀히 제작된 위작의 경우 오류를 일으키기도 한다. 첨단 장비를 사용하더라도 명쾌한 연대 파악은 결코 쉽지 않다"고 밝혔다. 가령 그림에서 발견된 안료들이 화가가 생존하던 당시에 사용됐던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하더라도 그 그림을 해당 화가가 그렸다 단정지을 수 없다. 같은 시대 다른 화가가 그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관 과정에서 덧칠을 하거나 그림틀을 바꾼 경우, 연대측정에서 최근작으로 결론 내려지기도 한다. 김실장은 "핵심은 안목 감정이며 과학적 분석 방식은 감정 과정을 지원하는 보조적 개념"이라고 지적했다. 경매사 크리스티도 안목감정을 우선시한다. 수개월에 걸친 연구 조사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에만 최종적으로 과학적 감정방법에 의뢰한다. 과학적 감정이 가짜를 입증할 수는 있어도 진짜를 밝혀주지는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우리의 과학적 감정 기법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 비교 데이터가 부족해서 다양한 적용이 어렵다. 김겸 국립현대미술관 보존수복팀장은 "국가기관이 주도해서라도 과학적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국립현대미술관 보존수복팀은 지난해부터 오지호 작가를 시작으로 미술재료 사용에 대한 시대적 특징을 연구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호암미술관은 10년째 자료실 산하에 한국 미술기록 보존소를 운영하고 있다.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 소장 역시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국내 화가들이 사용한 안료들의 샘플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