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의 피리 속에 붉은 구름 흩어지고/주렴 밖 서리 찬데 앵무새 지저귄다/밤이 깊어지나 외로운 촛불 비단 휘장 비추이고/반짝이는 성긴 별 은하수도 기울었네 조선시대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임을 그리며’의 한 대목이다. 어린시절 어깨 너머로 배운 글로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허난설헌이었지만 남성 중심의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태어나 제 능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았다. 결혼 후 남편의 과거 낙방과 외도, 설상가상으로 잇따른 두 아들의 죽음으로 그녀는 여성으로서 박복한 삶을 살다가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불행했던 삶을 빛나는 시로 승화시킨 그의 시는 당시 중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에게도 극찬을 받을 정도였다. 그의 동생 허균이 명나라 사신 주진번에게 준 ‘난설헌집’이 훗날 중국과 일본에서도 간행돼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그의 작품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허난설헌 외에도 우리 역사에 이름을 남긴 여성들은 많다. 소설가인 저자는 단군왕검의 어머니인 웅녀를 시작으로 백제를 건국한 여장부 소서노, 호동왕자를 위해 자명고의 비밀을 누설하고 부왕의 손에 목숨을 빼앗긴 비련의 주인공 낙랑공주, 조선왕조 말 탁월한 정치력을 발휘했으나 일제의 자객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당한 명성황후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를 빛낸 국모와 여걸 27명의 일대기를 한 권에 담았다. 책은 한국 여성사와 궤적을 같이해 여걸들의 일대기를 시대순으로 기술한 통사적 열전이다. 저자는 역사적인 기록에 살을 붙여 한 시대를 살다간 여걸들의 일생을 역사 소설처럼 풀어냈다. 수천년간 남성 중심으로 이어져온 역사 속에서도 남성에 버금가는 업적을 남긴 여인들의 활약상을 자세하게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