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 `정상`의 범위를 넘어서 패닉을 향해 달려 가는 것 같다. 장중에 들려온 북한 관련 루머 만으로 시장은 널뛰기를 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투자자들은 다시는 주식을 쳐다보지 않을 것처럼 헐값에 던져버리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어쩌다 한국 주식시장이 이런 참담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여러가지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북한 핵 개발을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로 촉발된 대규모 외국인 순매도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며, 이라크 전쟁의 불확실성을 원인으로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2월의 아시아 태평양지역 시장의 동향을 살펴보면 한국만 주가가 빠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만일 지정학적 위험과 같은 한국의 특수성에 그 원인을 돌린다면, 1월까지만 해도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잘 나가던 타이완 주식시장의 폭락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질 것이다. 지난달 얼마나 타이완 주식시장은 12% 폭락해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 최고의 주가 하락률을 기록했다. 이 기간에 MSCI 아시아 태평양지수(일본 제외)는 3% 남짓 하락했다.
한국에 이어 타이완주식시장으로, 더 나아가 필리핀으로 확산되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 공세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타이완 주식시장은 북한 핵 개발 문제로 고통받지 않는 데 말이다. 결국 세계 금융시장이 점점 더 통합되면서 한 나라의 특수한 문제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금융시장의 통합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일들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세계 금융시장의 곳곳에서 나타나는 주식시장의 급등락 현상은 개별 국가 차원의 문제라기보다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위험 기피 심리`의 확산 현상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국제 금융시장의 위험기피 심리가 강화될 때 한국 주식시장은 이중고를 겪게되는 것이 보통이다. 일반적으로 미 금융시장의 위험기피 심리의 강도를 보여주는 회사채의 가산금리 동향과 한국 주식시장에서의 외국인 순매수 동향을 살펴보면, 두 변수가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미국 채권시장의 참가자들이 회사채보다는 국채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 회사채 가산금리가 상승할 때,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순매도로 돌아서는 것이다. 물론 그 반대도 성립한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미국 기업이 발행한 채권조차 기피하는 상황에 훨씬 더 위험해 보이는 개발도상국의 주식을 살 마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런 현상을 더욱 부추기는 이유는 미국 나스닥 지수가 회사채 가산금리의 동향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미국 나스닥 시장은 미국경제의 가장 중요한 바로미터로 기업들의 중요한 자금원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런데 회사채 시장이 꽁꽁 얼어붙는 상황에서 주가가 오를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 1999년의 기술주 붐 이후 한국 주식시장이 최근 미 나스닥 시장에 대해 매우 강력한 동조성을 보이는 것을 생각할 때, 한국 주식투자자가 미국 금융시장의 위험기피 심리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근 미 회사채 가산금리가 유가 급등 및 미 국채시장의 랠리에 힘입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음을 감안하면, 당분간 한국 주식시장은 약세 기조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최근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위험기피 심리 확산이 이라크 전쟁의 불확실성과 미국경제에 대한 불안에서 비롯되었음을 감안하면, 다가오는 전쟁이 세계 금융시장의 추세를 결정할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주식시장의 참가자들로서는 회사채 가산금리와 같은 국제금융시장의 중요한 지표 변화를 예의 주시하는, `추세에 굴복하지 않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홍춘욱 한화투신운용 투자전략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