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한미FTA와 가혹한 정치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말이 있다. 뜻 그대로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의미이다. 시아버지와 남편, 자식까지 호랑이에게 희생됐지만 가혹한 정치가 있는 세상에는 내려갈 마음이 없다고 말한 여인을 보고 공자가 한 말이라고 한다. 10년 전 IMF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 국민 모두 절실히 깨달은 사실이기도 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개방을 통해 경쟁력 강화가 가능하다고 모호한 기대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단기간 내에 일부 산업 중심의 경쟁력 강화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IMF 위기를 떠올린다면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세계화가 국제적인 추세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미국식 FTA로만 한정해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세계적인 추세에서 벗어난 경직된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주변의 남미ㆍ동남아ㆍ유럽을 보더라도 현재 세계는 지역경제권을 중심으로 세계화의 파고에 대처하고 있다. 근거리 경제권이 가지는 역사ㆍ외교ㆍ문화적 공통점을 가지고 안정된 경제협력을 추진하는 것이 바로 세계화 시대의 검증된 대안인 것이다. 정부도 아시아 주변 국가 사이의 통상 및 경제협력, 그리고 평화협력 체제를 우선과제로 강조해왔다. 한ㆍ중ㆍ일을 시작으로 아세안 국가들과의 안정된 평화경제협력이 우선돼야 하며 동시에 남북경협의 지속적 발전이 필요하다고 역설해왔다.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인 미국과 FTA 협상을 하려면 최소한 주변국과의 협력관계가 성숙되었을 때 그 힘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정부는 지난 2003년 FTA 로드맵에서 이러한 흐름에 따라 미국과의 FTA를 마지막 단계로 상정한 바 있다. 그러던 정부가 지난해 별다른 이유나 설명도 없이 한미 FTA를 갑작스럽게 추진하면서 정책기조를 완전히 바꿨다. 뿐만 아니라 협상의 입안부터 추진, 타결 전과정에서 국민은 물론이고 국회도 철저히 배제하면서 반대 입장의 입을 막고 찬성 홍보에 혈세를 쏟아 부었다. 한미 FTA의 결과는 참담하다. 반덤핑 완화, 개성공단 인정, 비자쿼터 확보 등 시작부터 ‘미국으로부터 얻어 내겠다’고 약속해놓고 하나도 얻은 것이 없다. 협상 초기에 양국의 상호 요구안 중에서 미국 요구안은 77% 반영된 반면 한국 요구안은 단 8%밖에 반영되지 못했다. 뒤늦게 공개된 협상문을 분석한 결과 정부가 성과라고 홍보했던 분야인 자동차ㆍ섬유 같은 상품 분야마저도 우리 측의 긍정적 효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보건의료 분야와 광우병 쇠고기, 유전자조작농산물(LMO) 등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사안들마저도 미국 측의 일방적 요구를 들어주고 말았다. 투자ㆍ금융서비스 분야를 비롯해 투자자-정부제소 조항의 수용으로 부동산정책, 재벌 개혁 등 국내 정책도 제약을 받게 됐다. 아울러 의약품 특허연장으로 적게 잡아도 10년 동안 5조8,000억원의 건강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 지금도 한미 FTA를 반대하는 단체에서는 협상문을 분석하고 우리 경제의 예상피해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예상피해 수치나 그에 따른 대책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다른 당 대선후보 공약까지 면밀히 분석하는 정부가 참여정부다. 이런 정부가 국민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주게 될 통상 협정의 경제적 영향 분석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사실만으로도 한미 FTA 협상 결과에 대해 의심할 수밖에 없고 찬성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 된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의 의미를 새겨 보면, 위정자는 정치가 백성들에게 얼마나 고통이 될 수 있는지를 깨닫고 정책을 추진할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한미 FTA가 국민에게 어떤 고통을 줄 수 있는지를 깨닫고 현재의 막무가내식 처리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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