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7월14일] 퍼킨


‘하필이면 화학이냐?’ 부유한 토목업자의 막내 아들 윌리엄 헨리 퍼킨(William Henry Perkin)이 왕립화학학교를 택했을 때 주변의 반응이다. 화학을 업신여기는 영국적 풍토에서도 고집을 꺾지 않은 퍼킨은 3년 후인 1856년 18세의 나이에 인조염료를 추출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퍼킨은 운이 좋았다. 왕립화학학교 입학 2년 뒤 실력파인 독일인 초빙교수 호프만의 조수로 뽑히고 국가 프로젝트인 키니네 합성 작업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었다. 페루에서 자생하는 식물이 원료인 키니네는 말라리아에 특효가 있어 거의 전세계에 군대를 파견하던 영국의 관심거리였다. 영국 정부로부터 인공 키니네 개발용역을 의뢰받은 호프만 교수의 지시에 따라 석탄 찌꺼기를 연구하던 퍼킨은 실험을 하면 할수록 속이 타들어갔다. 원하는 키니네 대신 옅은 자주색 액체가 자주 추출됐기 때문이다. 낙심한 퍼킨이 새 액체, 아닐린을 실험했을 때 놀라운 효능이 나타났다. 강력한 염색 효과가 발견된 것이다. 학교도 집어치우고 부모의 돈을 긁어모아 공장을 차린 퍼킨은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아닐린 염료의 등장으로 인디고나 꼭두서니 등에서 나오는 식물성 천연염료시장이 타격을 받았다. 염료사업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인도의 섬유산업도 이때 완전히 무너졌다. 퍼킨은 36세까지만 일하고 1907년 7월14일 69세로 사망할 때까지 새로운 염료 개발에 일생을 바쳤다. 퍼킨의 노력에도 영국의 유기화학공업은 발전이 더뎠다. 퍼킨의 이름도 미국에서 제정돼 ‘유기화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퍼킨상’에만 남은 정도다. 영국을 대신해 오히려 독일이 세계의 화공산업 발달을 이끌었다. 화학을 중시하고 산학협동체제를 구축한 덕분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퍼킨이 버렸던 천연염료가 요즘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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