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5년여를 끌어온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에서 미국ㆍ유럽연합(EU) 등을 비롯한 이해관계국들의 첨예한 입장 대립으로 결국 협상 중단이라는 실질적 의미의 협상 결렬이 선언됐다. 이제 WTO의 다자협상을 통한 무역 장벽의 제거와 교역 확대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에 따라 자유무역협정(FTA) 확대를 통한 지역간 무역자유화와 시장 선점의 의미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무역의존도가 70%가 넘는 명실상부한 통상국가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 FTA 지각생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FTA 체결에 소극적이었고, 결국 FTA 체결에 적극적인 국가들에 비해 세계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여건에 놓이게 됐다. 이에 우리나라는 칠레를 선두로 해 동시다발적이고 높은 수준의 FTA를 추진하게 됐다.
한ㆍ칠레 FTA 협상 및 비준 과정에서의 극심한 반대와 갈등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러나 한ㆍ칠레 FTA가 발효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이미 양국간에는 교역 확대 등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어 한ㆍ칠레 FTA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이제 우리는 또다시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 한미 FTA 협상을 하면서 한ㆍ칠레 협상시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더 뜨거운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다.
물론 한미 FTA는 기존 우리나라가 FTA를 체결한 칠레ㆍ싱가포르ㆍ유럽자유무역연합(EFTA) 등에 비해 그 경제적 파급 효과가 매우 클 것이기 때문에 국내적 찬반 양론의 과열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통상국가인 우리에게 단일국가로서 최대 경제 규모(2004년 국내총생산(GDP) 약 11조7억달러) 및 세계 최대 수입시장(2004년 약 1조7억달러)인 미국시장에서 중국ㆍ일본 등 경쟁국들과의 경쟁에 불리하지 않고, 오히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FTA 체결은 우리의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국제 협상은 ‘타결 의사를 가진 2개국, 또는 그 이상의 국가간에 의견 교환(Communication)을 통해 상호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의 합의(Agreement)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협상 당사국간에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그 협상 결과가 일방 당사국에 불만족스러울 경우에는 협상이 결렬된다. 한미 FTA 협상은 이미 두 차례 협상을 마쳤고 다음달 초에는 미국에서 3차 협상이 열릴 예정으로 협상이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한미 FTA가 가져올 결과에 대한 명확한 분석과 이해 없이 종속론까지 거론하며 무작정 반대하거나 협상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국익 극대화라는 협상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협상 과정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한미 FTA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할 것이다. 특히 거대한 미국시장을 효과적으로 진출하면서 경쟁력이 취약한 분야는 가급적 지켜나가도록 국익을 극대화하는 협상전략과 대안을 제시해 우리 협상팀을 지원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지금이 이러한 시기이다.
우리는 시장 개방을 통해 국내 산업이 치열해진 경쟁에 대처해 기술과 품질을 제고함으로써 외국의 선진 다국적기업과의 경쟁에서 당당히 이기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철강ㆍ전자산업들이 그 좋은 예이다. 또한 유통업에서도 토종 기업들이 외국의 대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당당히 우위를 지키고 있다. 한미 FTA를 다시 한번 우리의 저력을 발휘해 국내 산업의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주력 산업은 고부가가치화와 차별화를 통해 글로벌시장에서 초일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산업의 허리 부분인 부품ㆍ소재산업도 적극 육성해 동북아 글로벌 공급기지화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정보기술(IT)ㆍ바이오기술(BT)ㆍ나노기술(NT) 등 신기술의 개발과 융ㆍ복합화를 통해 신성장산업군을 창출하고, 지식 기반 서비스를 새로운 수출 동력으로 육성해 탈공업화와 고용 없는 성장 기조에 대응해나가야 할 것이다.
한편 이러한 과정에서 국내 경쟁력이 취약한 일부 산업, 특히 중소기업의 피해가 우려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 2004년 3월 FTA에 따른 농어업 등의 피해 지원을 위해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ㆍ시행되고 있으며, 올 4월에는 제조업 및 이와 관련된 서비스업의 피해 지원을 위해 ‘제조업 등의 무역 조정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 공포돼 시행될 예정이다. 이미 거대 FTA를 체결, 운영하고 있는 미국ㆍEU 등에서 시행되고 있는 무역조정지원제도는 자유무역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국내 산업 보호에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무역조정지원제도를 효과적으로 도입, 추진함으로써 동시다발적인 FTA 추진으로 인해 부득이 피해를 입을 국내 산업의 보호장치를 마련하고 있는 바, 향후 국내 업계의 적극적인 활용이 기대된다.
이제 좀 있으면 3차 협상이 미국 시애틀에서 열리게 된다. 우리 협상팀이 역량을 극대화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