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 경제는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올해도 우리 경제를 둘러싸고 있는 대내외 여건들은 그리 밝지만은 않은 것 같다.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이미 씨티그룹이 국내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홍콩상하이은행(HSBC) 또는 스탠다드차타드은행(SCB)이 곧 국내시장에 진출할 것이 확실시된다. 국내 금융기관들에는 버거운 상대임에 틀림이 없다.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속한 시장개방과 함께 외국계 자금이 밀려들었지만 이들 자금의 대부분은 펀드들이었다. 이들의 목적은 국내시장 잠식이 아니라 단기간에 기업의 가치를 높여 되파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씨티와 HSBC의 목적은 국내시장에서 시장을 확대해 수익을 제고시키는 것이다. 국내 금융기관과 외국계와의 진정한 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외국계와의 전쟁은 이미 가격경쟁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들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단기간에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 출혈을 감수하면서 금리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특판예금을 내놓으면서 고액자금을 단기간에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올해도 지속할 것이다. 자금조달 비용, 생산성, 효율성 등에서 이들에 비해 열위에 있는 국내 금융기관들에는 힘겨운 경쟁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결코 실망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외환위기 이후 강도 높은 구조개혁을 통해 상당한 역량을 축척해왔다. 아직 문제점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97년 말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비약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자산규모 증대뿐 아니라 건전성ㆍ수익성ㆍ효율성 등과 같은 질적 지표들이 크게 개선됐다. 물론 국제 금융시장에서 선진 금융기관들과 경쟁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국내시장에서는 외국계와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은 갖췄다고 생각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금융기관이 새로운 지역에 진출해서 영업기반을 갖추는데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그 지역의 금융시스템과 고객의 특성 등에 대해 적응하고 고객을 유치하는 데 적지않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장기간의 거래관계를 통해서 우리 고객들의 속성과 정보를 축척해왔다. 또한 국내경제ㆍ금융시스템ㆍ정부정책 등에 대해 많은 노하우를 갖고 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국내 금융기관들의 하고자 하는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주요 은행장들은 올해를 전쟁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나섰다. 젊고 혁신적인 성향을 가진 경영진들이 포진되면서 시장 중심의 경영과 내부혁신을 통해서 정부가 아닌 시장이 인정하는 금융기관으로 변모하고 있다.
선진 금융기관의 도전은 분명 우리에게는 위협적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들을 적대적인 관계로만 여겨서는 안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동반자가 돼 이들로부터 선진기법들을 조기에 배워나가야 한다.
이들의 국내진출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국내 금융기관들의 선진화를 앞당기게 될 것이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이들과의 선의의 경쟁관계를 통해 선진화를 이룩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