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10월 2일] 공급과잉의 후유증

미분양아파트의 적체와 집값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요즘 부동산시장을 보면 지난 1980년대 중후반의 주식시장이 연상된다. 당시 주식시장은 88서울올림픽과 3저(低)호황으로 파죽지세의 상승세를 탔었다. 그러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주가는 1989년 4월1일 만우절 1007.77포인트를 꼭지로 3년반 남짓 동안 줄곧 떨어지기만 했다. 주가가 떨어지자 또 별의별 일이 벌어졌다. 깡통계좌가 속출했고 전국에서는 주가부양을 촉구하는 시위가 연일 벌어졌다. 극약을 먹고 자살하겠다는 소동도 비일비재했다. 성난 민심에 놀란 정부는 결국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행은 3개 투자신탁회사에 3조원이라는 특별융자를 지원해 이 돈이 떨어질 때까지 주식을 사도록 했다. 그러나 무너진 둑은 3조원으로 막기에 턱없이 모자랐다. 투자자들은 이제 주식투자라면 넌더리를 냈고 시장은 파리를 날렸다. 그렇게 3년반이라는 인고의 세월이 지난 뒤에서야 주가는 다시 기력을 찾기 시작했다. 당시 주가하락은 공급과잉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정부는 선진경제로 진입하기 위해 자본시장을 키워야 한다며 대대적인 육성책을 폈다. 당시는 3저호황으로 경기가 상승세를 탄데다 경상수지 흑자로 돈이 넘쳐나는 바람에 이 같은 정부정책이 큰 성과를 거뒀다. 주식이 상장되면 주주와 투자자들 모두 큰 이득을 봤다. 기업공개는 터진 봇물처럼 러시를 이루기 시작했다. 물타기증자와 같은 각종 편법도 기승을 부렸다. 결국 시장은 공급과잉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청약미달사태가 빚어졌다. 어떤 기업은 상장된 지 반년도 안돼 부도를 내는 일이 빚어지기도 했다. 투자자들의 불신은 극에 달했고 기업공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 요즘 부동산시장도 그때의 주식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지난 수십년 동안 주택공급확대정책을 펴왔다. 전국이 미분양아파트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도 공급확대 쪽에 힘이 쏠리고 있다. 수없이 많은 신도시개발이 이뤄졌지만 최근에는 그린벨트까지 풀어서라도 공급을 늘리겠다고 나섰다. 그동안의 주택공급확대정책으로 정부와 건설업체ㆍ국민들 모두가 재미를 봤기 때문이다. 정부는 주택건설로 경기를 부양했고 짓기만 하면 분양되는 덕에 건설업체들도 마냥 재미가 좋았다. 국민들도 당첨되면 거액의 프리미엄이 붙는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밤새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공급확대정책은 정부ㆍ업체ㆍ국민들 모두가 이득을 보는 ‘포지티브 섬’ 게임이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미분양아파트는 공식적으로 16만가구, 비공식적으로는 25만가구에 이르고 있다. 지방에서 시작된 미분양사태는 이제 수도권에서도 보편적인 일이 되고 있다. 주식과 마찬가지로 부동산시장도 공급과잉의 덫에 걸린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버블세븐 지역부터 거품이 빠지면서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거품은 매매시장뿐만 아니라 전세시장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다. 건설업계는 부동산침체의 원인으로 과중한 세금부담과 주택금융규제 등을 지적했다. 정부는 종합부동산세ㆍ양도세 등을 과감히 풀었다. 그런데도 부동산시장은 침체에서 벗어날 기미가 없다. 업계의 요구대로 금융규제를 풀면 반짝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고금리에 은행들까지 돈이 말라 있어 실현가능성도 희박하다. 결국은 공급과잉을 해소하는 길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 정부가 미분양주택매입 등 수급해소에 힘을 쏟고 있지만 3투신에 대한 특융이 반짝 효과에 그쳤듯이 근본대책은 아니다. 뒤늦기는 했지만 건설업체들의 피나는 자구노력이 요구된다. 살기도 불편하고 팔리지도 않은 곳에 비싼 집을 지어 놓고 정부에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할 것이 아니라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정부의 주택공급정책도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주택보급률을 높이기 위한 공급위주의 정책은 이제 재고해야 한다. 날로 심화되는 고령화 등을 감안해 세대별ㆍ연령별ㆍ지역별 주택수요에 맞는 장기적인 주택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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