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6월 18일] 경기회복, 투자에 달렸다

경기바닥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침체가 오래갈 것이라고 목청을 높인 비관론자들까지 속속 입장을 바꾸고 있다. 경기가 정말 바닥을 쳤는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하강 속도가 둔화된 것만은 분명하다. 경기급락 저지의 버팀목은 재정지출 확대였다. 금융위기를 수습하고 경기진작을 위해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재정의 경기회복 역할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풀린 돈만으로도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따른 ‘출구전략(exit plan)’ 마련의 필요성과 함께 재정건전성 악화 문제가 불거지는 판에 정부지출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는 일이다. 재정이 경기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해냈지만 주 물줄기가 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재정지출 무한정 늘릴 수 없어
따라서 경기가 다시 고꾸라지는 것을 막고 회복세를 이어가도록 하려면 민간 부문이 살아나야 한다. 그 관건은 기업의 투자활성화다.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로 투자의 파급효과가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투자가 이뤄져야 고용이 늘어나고 소득과 소비가 증대해 경제가 살아나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정부가 최근 기업의 투자확대를 부쩍 강조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투자촉구 톤이 예전과 달리 까칠해졌다. 형식은 당부이지만 가시가 들어있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이달 초 호암상 시상식에서 ‘지금처럼 민간투자가 부족할 때는 삼성을 세운 호암 이병철 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지금 이 회장이 살아계셨다면 민간투자 부문에서 좋은 이니셔티브가 반드시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게 덕담만으로 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고(故) 이 회장을 기리는 말로 지금의 경영을 우회적으로 꼬집으며 투자확대를 주문한 것이라는 얘기다. 박영준 국무차장의 말은 좀 더 직설적이다. 그는 “정부가 국민들의 혈세로 확충된 재정을 통해 기업의 부도ㆍ파산을 막아줬는데 기업의 역할이 미진하다”며 투자확대 등 적극적 역할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 기업에 대한 야속함과 질책ㆍ압박이 읽혀지는 표현들이다. 정부가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다. 이명박 정부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천명하며 재계가 그토록 목말라 하던 출자총액제한제 폐지와 금산분리 완화 등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세금도 낮췄다. 그래서 ‘재벌과 부자들을 위한 정부’라는 비판까지 받지 않는가. 기업에 흡족한 수준이 아닐지 몰라도 정부로서는 할만큼 한 셈이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몸을 사린다. 재계는 여러 차례 투자확대를 약속했지만 번번히 말로 끝났다. 투자여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10대그룹 상장사들의 내부유보율은 거의 1,000%에 달한다. 그러니 섭섭함을 넘어 배신감을 느낄 만도 하다. 기업 미래 위해서라도 투자를
정부가 기업의 팔을 비틀어 투자를 끌어내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성공할 수도 없다. 그러나 기업들의 투자기피는 한번 짚고 넘어갈 문제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경제회생을 위해 지금 투자확대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투자기피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불투명한 경기전망, 북핵 리스크, 정국 및 사회불안 등 불확실성의 안개가 아직도 자욱한데 선뜻 투자에 나서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상황이 어려워 모두가 움츠리고 있을 때 투자를 늘리고 마케팅을 강화한 기업이 위기 이후 훨씬 강해진 사례가 하나둘이 아니다. 투자는 성장동력 확충이라는 점에서 기업 스스로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군살은 빼야 하지만 연구개발 투자 확대 등 미래의 먹거리를 찾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기업들이 투자에 보다 적극 나서주기 바란다. 정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업 자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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