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만신창이 고속철/정치논리가 「부실철」 만들었다

◎최대 국책사업에 회의록도 남기지 않아/6공때 「임기내 착공」 공약 설계않고 첫삽경부고속철도는 출발부터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사업의 경제성이나 타당성보다 정치논리와 졸속행정이 앞섰다. 이는 끝내 사업비 3배 증액, 공사기간 6년11개월 연장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 오늘의 결과는 착공 때부터 예견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당시 대선공약이던 「임기내 착공」에 집착, 경제적 타당성이나 기술적 검증없이 공사부터 하도록 밀어붙였다. 대만이 12년, 프랑스의 TGV와 일본의 신칸센이 7∼10년간 준비끝에 착공한 것에 비해 우리는 기술조사 시작 후 불과 1년만에 노선을 확정했고 3년만에 착공한 것이다. 특히 지난 92년 6월 설계 도면도 없이 착공했고 차종 결정도 하지 않은 채 선로 설계부터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질렀다. 공단 관계자는 『지난 91년 발표한 사업비 5조8천5백억원은 단순히 일반 철도 공사비에 30%를 더해 산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부고속철도가 얼마나 졸속으로 시작됐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자 다음 순서는 엉망진창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94년 6월 차종이 TGV로 결정되자 노반공사 설계를 다시 해야 했고 상당 부분 재시공도 불가피했다. 폐갱도를 지나는 상리터널의 경우 착공 후 무려 4년이 지난 뒤 노선변경을 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고속철도는 현 정부 들어서도 끊임없이 정치논리에 끌려다녔다. 지난 94년 대구 보궐선거 때 표얻기 차원에서 대구역사의 지하화가 사실상 결정됐다. 대전역사도 형평성 차원에서 지하로 건설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대구·대전역사의 지하화로 1조3천억원의 공사비가 더 들어가게 됐다. 경주노선도 지난해 상반기에 착공할 예정이었으나 문화계와 주민들의 반발로 바꾸게 돼 실시설계, 환경영향평가, 기초조사에 들어간 95억원만 날렸다. 관련 부처와 기관들도 책임 떠넘기기로 파행운영을 방치했다. 국내 최대 국책사업에 회의록 하나 없어 누가 정책입안을 했는 지, 주요 정책변경시 책임자가 누구였는 지도 분명치 않다. 정책의 잘못으로 엄청난 국고를 낭비하게 됐는데도 책임질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이번 수정안도 최종 안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언제 바뀔지 모를 요인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대구·대전역사의 지하화, 차량기지 등은 여론이 엇갈려 해당 자치단체와 주민들의 집단민원 소지를 늘 안고 있다. 용지매입도 안된 대전이남구간에서는 얼마나 많은 민원들이 쏟아질지 가늠할 수 조차 없다. 경부고속철도는 다음 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정치논리에 휘말려 또 한차례 진통을 겪을 것임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정두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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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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