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살빼기 경영+대외신용 확대+가격상승 활용/미 상륙 5년 고생끝 “흑자열매 단맛”/현지인에 업무지휘봉 가동률 90%·생산성 2배로/작년 200만불 첫 순익… “이젠 뉴플랜트 건설 사활”기업의 세계화는 기후가 다르고 토양이 다른 곳에 나무를 옮겨 심는 것과 같다. 물과 비료만 많이 주면 옮겨 심은 나무가 잘 자랄 것 같지만 새로운 기후와 토양에 적응하는 과정에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이런 고통을 제대로 이겨내지 못하면 고사한다. 기업은 철수 해야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쌍용양회가 미국 캘리포니아에 투자한 리버사이드 시멘트는 이식한지 5년만에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에 빨아올린 물로 잎이 돋아나는 나무와 같다고 할까. 로스엔젤레스에서 리버사이드 시멘트 공장에 가려면 공장 도로를 두어시간 달려야 한다. 아열대 기후의 더위와 사막의 건조함이 공장 주위를 감싸고 있다. 회색빛 석회석을 캐서 갈고 굽는 제조공장은 캘리포니아 남부의 삭막함과 함께 숨을 콱콱 막는다. 이런 기후 이런 토양에 한국에서 건너온 자본이 열매를 맺으려면 엄청난 시련을 겪을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리버사이드 시멘트는 크게 두개의 공장으로 나뉘어 가동되고 있다. 로스엔젤레스 북동쪽 빅터빌에 위치한 오로그란데 공장은 주공장으로서 연간 1백만톤의 일반 시멘트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 남쪽에 있는 크레스모어 공장에서는 10만톤의 백시멘트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오로그란데 공장에서 생산된 클링커를 분쇄(그라인딩)하는 공장도 있다.
두 공장의 총 생산능력은 연간 1백35만톤, 판매 지역은 주로 캘리포니아 남부(60%)이며 네바다·애리조나 유타지역으로 판매망이 확대돼 나가고 있다
리버사이드 시멘트는 지난해 9천3백만달러의 매출액에 2백만달러의 순이익을 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쌍용이 현지에 투자한지 5년만에 흑자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기업에서 흑자전환은 모든 면에서 터닝포인트가 된다. 축소지향적 경영에서 확대지향적 경영으로 전환하는 계기이기도 하고, 더이상 모 기업의 지원없이 자체 신용으로 기업을 회전하는 힘을 갖는 순간이다. 리버사이드 시멘트가 낡은 공장을 현대화하고 올 연말께 적지만 주주(쌍용)에게 배당을 나눠줄 생각을 하는 것도 흑자원년을 맞은데서 가능했다. 사막의 선인장처럼 웅크러들었던 지난 5년간의 악천후를 이겨내고 이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고 도약하고 있는 것이다.
쌍용그룹이 이 회사에 자본을 대기 시작한 것은 지난 91년 초. 국내시멘트 산업은 더 이상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고 생산기반의 다국적화를 통해 기업의 포트폴리오를 효율적으로 운영하자는 전략이었다. 그래서 경영권교체로 흔들리고 있던 리버사이드시멘트에 지분참여협상에 들어갔다.
쌍용은 91년 5월31일자로 3천5백만달러를 투자, 리버사이드시멘트의 지분 50%를 취득했다. 파트너는 비저웨스트사. 조인트벤처형태로 출발한 쌍용의 리버사이드운영은 초기에 엄청난 적자를 보아야 했다.
인수 다음해인 92년(회계년도기준) 리버사이드시멘트는 2천만달러나 적자를 냈다. 시장가격이 하락하고 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경기가 나쁠때 지분참여했기 때문에 당연히 겪을 수밖에 없는 시련이었지만 캘리포니아의 토양을 이해하지 못했고 조인트벤처 기업의 한계가 되는 문제도 있었다. 투자 자금의 절반이상에 해당하는 적자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서울의 추가 지원이 필요했다. 9백70만달러의 지원금이 도착했지만 영업상황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때마침 파트너인 비저 웨스트사가 나머지 지분 50%를 매각하겠다고 제의했다. 시멘트경기가 극도로 악화된 상태에서 1백%의 지분을 인수,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은 쉽게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비저웨스트사가 싼 가격에 지분을 내놓는데다 이왕에 경영권을 인수, 이 회사를 한번 살려보자는 생각에서 쌍용은 마침내 남은 지분도 사들였던 것이다. 그게 95년 1월말.
쌍용이 리버사이드 지분을 전액 인수한 후 1년만에 회사는 정상화되고 흑자로 돌아섰다. 미국 금융기관들이 조인트벤처보다는 단독투자 업체에 더 높은 신용을 주고 현지 경영진과 근로자들이 안정감을 찾았기 때문이다. 가동률도 높아졌다. 인수초기인 92∼93년 72∼74%이던 가동률은 94∼95년 85%로 껑충 뛰었고 지난해에 90%대를 넘어섰다.
리버사이드의 경영이 정상화된 것은 다운사이징(감량경영)에 큰 힘을 입었다. 인수초기에 5백9명이나 됐던 종업원이 현재 2백64명으로 줄어들었다. 3분의1에 해당하는 인력을 감축한 덕택에 연간 7백만달러 정도의 비용을 절감할수 있었다. 또 적은 인력에 가동률이 올라 1인당 노동생산성이 전보다 2배 가까이 높아졌다. 경영권 안정은 또 대외사용도가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행들로 부터 장기저리의 자금을 빌려 높은 이자의 단기채를 갚아나갔다. 덕분에 한해 4백만달러의 비용절감효과를 얻을수 있게 됐다. 단일 오너가 적극적 경영을 함으로써 보증 및 담보능력 등 신용도가 높아진 덕을 톡톡히 본데다 호재가 겹쳐 일어났다. 시멘트가격(벌크시멘트)이 93년 톤당 46달러에서 지난해엔 52.6달러나 상승했다. 올해는 56달러 이상 오를 전망이다.
리버사이드 시멘트의 현지인 경영체제도 경영난 극복에 도움이 됐다. 서울에서 온 직원은 홍경흠 부사장 등 4명에 불과하다. 인수 초기부터 사장겸 CEO(최고경영자)를 맡은 월리엄 맥코믹씨가 회사를 책임지고 있다. 서울에서 온 사람들은 모기업과의 관계유지, 장기경영전략에만 참여하고 일상경영 활동은 현지 경영인들에게 전적으로 맡겨놓고 있다.
리버사이드 시멘트는 이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낡은 생산시설을 뜯어내고 최현대식 시설로 대체할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 2천년대 초기에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이 회사는 캘리포니아 일대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시멘트사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회사측은 자신만만해 하고 있다.
◎인터뷰/홍경흠 리버사이드시멘트 부사장/“선진국의 경영·근로정신 배우는 것도 세계화의 정신”
『지난해 처음으로 흑자원년을 기록했습니다. 흑자를 냈다고는 하지만 경기가 좋아지고 영업을 잘해서라고 보다는 엄청난 감량경영과 부채정리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경영정상화에 따른 이익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홍경흠 리버사이드 시멘트부사장(45)은 흑자원년의 기록을 무척이나 겸손하게 받아들였다. 몸집을 줄여낸 흑자를 내 적자경영에서 탈출하자는 것이 그동안의 노력이었기 때문이다.
홍부사장은 올해부터 확대경영을 펴 나갈 계획이다. 『97년도는 매출을 1억달러로 올리고 1천만 달러의 순이익을 낼 계획입니다. 2000년대 까지는 1천2백만∼2천만달러의 순이익을 낼 것입니다.』
제조업 특히 시멘트와 같은 중화학 공업에서 매출액대비 순이익비율이 10%라면 엄청난 것이다. 지난 5년동안 고생한 보람이 이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홍부사장은 『올해는 주주들에게 배당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1백% 지분을 갖고 있는 쌍용시멘트가 투자한지 5년만에 이익금을 챙기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회사경영이 정상화된 만큼 낡은 공장시설을 현대화하는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일단 200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필요한 자금은 현지서 조달할 생각입니다. 자체신용으로도 이젠 자금조달이 가능해졌어요. 새로 공장지으면 이 일대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시멘트공장이 되는 것입니다.』 새 플랜트가 건설되면 생산능력을 현재 연간 1백35만톤에서 1백60만톤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홍부사장은 설명한다.
그는 인수초기부터 지금까지 6년째 리버사이드에 살고 있다. 리버사이드 시멘트의 산증인인 셈이다. 인수초기에 막대한 적자를 냈을 때의 고민이 흑자를 내면서 말끔히 사라졌고, 이러한 기억들이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 한다.
『세계화는 우리기업이 외국으로 지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외국의 경영기법을 배우는 것이기도 합니다. 미국인들의 사고, 경영방식, 근로정신을 잘조화하는 것이 현지기업으로 성공하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그는 현재 한국이 처해있는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선진국에 진출하면서 배운 경영노하우를 국내에 접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리버사이드(미)=김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