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하는 TV드라마의 인기가 대단하다. 당시 개그맨을 흉내 내는 주인공들의 인사법이 지금 청소년들 사이에서 대유행이고 시청자의 나이는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또래의 우정과 설렘, 이웃 간의 따뜻함이 십대들의 화젯거리라면 중년들에게는 이미 옛날이 돼버린 기억을 불러오는 즐거움이 드라마에 있다. 아이들은 현실에서 나이 든 세대는 과거에서 이 드라마를 즐기는 것일까 언뜻 물음이 떠올랐다.
중년이 추억하는 사실은, 그러나 추억의 시점이 그 시절이 아니라 지금이기에 의미가 발생한다. 콩나물 값 50원이라도 깎아야 하는 살림살이며 최루탄 가스 속에서 거리를 달리던 일, 반찬 하나 만들면 옆집과 나누고 친구와 투닥거리며 정을 쌓던 그 사실이 그때는 그저 고단하고 덤덤한 삶의 일부였다. 과거의 사실이 아련함과 따뜻함, 때로는 슬픔으로 되살아나는 것은 이후 숱한 경험의 인생살이를 겪고 지금에 이른 현재의 내가 그것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동일한 사실도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다른 의미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 드라마를 보다 말고 생각이 다른 곳으로 번져갔다.
사람은 늘 변하고 의미는 늘 새롭게 태어난다. 신체의 시계가 쉼 없이 돌아가듯 사람의 인지과정은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이며 판단의 주체로서 끊임없는 변화를 한다. 동일한 사건·사물·인물을 두고도 그래서 우리는, 심지어 과거와 현재의 나는 서로 다른 평가를 하고 다른 가치를 매길 때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공동체를 이루고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경험을 통한 비슷한 판단과 가치관으로 합의한 생활양식, 그것이 바로 '문화'다. 그래서 문화는 정지된 사물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개개인처럼 늘 변화하고 새로워질 수가 있다.
문화는 옷차림이나 식사법·요리·말하기·교육·예술·산업·정치 등 삶의 곳곳 단면을 통해 드러나는 사람들의 가치관이고 의미이다. 삶의 양태 곳곳에 스며들어 있으면서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작품이나 아이돌그룹 노래 한 곡을 만드느라 진지한 생산자의 작업과정과 그것이 유통되는 사회구조, 사람들이 그에 부여하는 의미로부터 우리는 문화를 논할 수 있다. 경제적 성과를 올리는 한류 '문화상품' 수출이 곧 한국의 '문화' 수출일 수 없고 수사적 장식으로 타 분야에 적당히 얹는 더하기식 '문화' 또는 '인문학' 융합교육의 진위를 가릴 필요가 있는 것도 그래서이다. 밝아오는 새해는 상품이나 말 속에 갇혀 있는 문화가 아니라 삶의 다양한 양태를 통해 드러나는 사람의 생각과 가치를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즐기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문화의 물화를 경계하고 문화의 인간화, 휴머나이징 컬처의 융성을 닦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