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청장에 부임한 지 어느덧 5개월을 맞고 있다.
평소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과 만나 대화를 하다 보면 ‘큰돈을 다루는 힘 있는 기관장으로 부임해서 좋겠다’고 추켜세우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 배경에는 우회적으로 필자에 대한 입지를 높여주려는 친구들의 우정(?)도 한몫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연간 43조원이라는 뭉칫돈이 나라장터라는 조달청 사이버공간을 통해 거래되고 있는 현실을 염두에 둔 접근법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부임 전만 해도 조달청이 아무리 전자조달을 하지만 물자 구매와 시설공사 계약 과정에서 부조리가 있지 않겠느냐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은 관련 업체나 수요기관으로부터 식사 약속 한번 들어오지 않는 ‘힘없는 기관’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각종 행사나 원자재 비축사업 활성화 관련 전문가들과의 모임 등 그야말로 빡빡한 일정으로 조달청장 고유의 업무가 계속되고 있다.
권력은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을 때, 즉 권력의 사유화가 가능할 때 힘이 있다고 하겠지만 책임이 따르는 힘은 오히려 의무라고 할 수 있다.
책임이 따르는 힘을 사용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공정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수요기관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고 조달청에 물자를 공급하는 업체의 70%에 달하는 중소기업의 애로 사항을 듣고 이를 해결하는 지원자의 역할을 세심하게 잘해나가야 할 것이다.
힘 있는 기관으로 인식하고 있는 조달청의 실체인 나라장터가 개통된 지 4년이 지났다. 나라장터가 개통되기 전만해도 해마다 100여건에 달하는 물자 구매와 시설공사 계약 과정의 부조리가 노출돼 여론의 몰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사람을 직접 만나서 하는 서면계약에 의한 부작용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첨단 정보기술(IT)을 접목시킨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가 개통되면서 원천적으로 부조리가 껴들 틈이 없어졌다. 가까운 친구들이 말하는 힘도 모두 없어진 것이다.
입찰에 필요한 예정가격도 전자시스템에서 무작위로 작성된 예비가격 중에서 산술평균을 통해 결정되기 때문에 더더욱 공무원 개인의 사유화 대상이 될 수 없다.
나라장터가 투명성을 선도하면서 조달청은 외부에서 말하는 ‘힘’이 없는 기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입찰 담당자는 외부의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됐으며 오히려 당당해졌다.
이런저런 연(緣)을 동원해 시한폭탄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을 맞아 시간을 소진하기보다는 정부 물자를 효율적으로 조달하고 사회적 약자기업을 지원하는 현재의 위치가 더욱 보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