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이봉조 통일연구원장

대담 : 황인선 부국장대우 정치부장<br>"정상회담서 김정일 경협구상 확인 가장 중요"<br>'퍼주기 지원' 어려워 6자회담 틀 안서 경협 추진을<br>대기업 경협참여, 북핵해결로 북미관계 개선되면 시작될듯<br>남북 평화공동선언·정상회담 정례화 약속 나오길 기대


“남과 북 경제계 인사들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앞으로 경제협력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심도 있게 논의하겠지만 결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봉조(53ㆍ사진) 통일연구원 원장은 10월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열리는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30일 서울경제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어 “그 구상에 대한 확인이 이뤄지면 우리가 적극 포용할 필요가 있다”며 “구체적인 문제는 나중에 실무회담에서 결정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통일정책의 산실인 통일연구원을 이끌고 있는 이 원장은 지난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실 통일비서관 자격으로 방북했었다. 그는 그동안 통일부 차관, 통일연구원 원장을 지내면서 2차 남북 정상회담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 수유리 통일연구원 연구실에서 이 원장을 만나 남북 경제협력와 한반도 평화체제 등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와 전망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들어봤다. -우선 10월2일 열릴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의미를 들려주십시오. ▦이번 회담은 2000년 정상회담 이후 7년 만에 열리는 것이어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남북 간에는 아직도 적대와 대립의 관계가 남아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 소통의 기회를 갖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방북하는 4대그룹 총수 등 경제인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기대됩니다. ▦북측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회담에서 경협은 매우 중요하게 다뤄야 할 과제죠. 회담을 통해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가시적 성과는 경협 확대입니다. 물론 대기업이 경협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 기업은 세계화돼 있어 기업 총수가 북한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쉽게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투자의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아 주주들이 찬성하기가 쉽지 않아요. 대기업은 천천히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고 북미관계가 개선된 후 대기업의 참여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왜 전격적으로 정상회담에 응했을까요. ▦김 위원장으로서는 지금이야말로 북미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호기라고 본 것 같아요. 북한은 이미 9ㆍ19공동성명을 통해 핵 포기를 선언했고 지금은 그 과정의 하나인 불능화 단계 직전에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1998년 전면통치에 나선 후 줄곧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기 때문에 그 연장선에서 적극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봅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남북 정상회담에서 선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요. ▦양측 정상이 이번 회담에서 만나 평화체제의 필요성과 북핵 문제 해결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 간 긴장완화, 즉 군사적 신뢰구축이 있어야 합니다. 우발적인 무력충돌을 막을 수 있는 조치가 남북 간에 합의되고 이행돼야 하는 것이죠. -북핵 문제가 소홀히 다뤄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북핵 문제를 논의하지 않고 정상회담을 마무리하기는 어렵겠죠. 그런데 북핵 문제를 정상회담 과정에서 다 해결하고 오라는 주장은 무리라고 봅니다. 정부는 북핵 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상회담과 6자회담의 역할분담 차원에서 보면 북핵 문제는 6자 틀에서 논의하고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싶습니다. -최근 북한의 대시리아 핵시설 수출 의혹이 제기됐는데요. ▦북한과 시리아 모두 이 사실에 대해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핵 수출 의혹에 대해 정면 대응해야겠다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동안 미국 내에서 북미관계 개선으로 가는 분위기가 조성될 때 이를 방해하는 주장이나 사건들이 대화의 진전을 막아왔기 때문에 북측도 신중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ㆍ북ㆍ미ㆍ중 4자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을 제기하는 견해도 있습니다만. ▦그런 구상은 개인적으로 성급한 분석이라고 봅니다. 6자회담에 이은 6자 외교장관회담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4국 정상회담을 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전 여건조성이 이뤄져야 하는데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것이죠. -대선을 두달여 앞두고 개최된 남북 정상회담을 두고 논란이 적지않습니다. ▦요즘처럼 북핵 해결 가능성이 높아진 적이 없었습니다. 국제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기회라는 것이죠. 그런 큰 흐름에 비하면 한국의 대선은 작은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선이 2개월반 남았지만 지금과 같은 좋은 기회를 흘려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양측 정상이 뭔가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소탐대실해서는 안 되겠죠. -10억달러 대북지원설이 나오는 등 ‘퍼주기 논란’이 재연될 조짐도 있어요. ▦대규모 경제지원은 어렵다고 봅니다. 6자회담의 틀을 고려한 바탕에서 경협을 추진해야 됩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단계로 나가면 관련 당사국들이 경제지원을 하겠다고 합의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방적이고 일회성에 그치는 경협이 아닌 지속적이고 상호 호혜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는 어떻게 논의될 것으로 보십니까. ▦김 위원장이 직접 거론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봅니다. 서로 양보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양 정상이 해결할 문제도 아니죠. 솔직히 이 문제는 해법을 찾기 어렵습니다. 김 위원장도 NLL 문제를 제기할 경우 남측 여론이 나빠질 것을 염두에 둘 것입니다. 이 문제는 남북관계 발전 과정에서 장애요소로 작용하지 않게 관리하는 게 현 단계에서 할 수 있는 현질적인 처방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장수 국방부 장관이 이례적으로 공식수행원에 포함됐는데요. ▦정부에서 적절하게 판단해서 결정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남북 간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위한 협의체가 국방장관회담이에요. 국방장관의 참여로 앞으로 남북 국방장관 회담이 정례화하는 계기가 된다면 한반도 평화 증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번 회담을 통해 이것만큼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있다면.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남북 공동선언이 이뤄지기를 기대합니다. 나아가 민족 구성원 간의 화해, 이산가족 및 납북자 군국포로 문제에 대한 진전된 합의가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정상회담의 정례화를 약속한다면 훨씬 훌륭한 회담이 되겠죠. -인생관이랄까 좌우명이 있다면 소개해주십시오. ▦역사적 소명을 가지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저의 인생관이라면 인생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26년의 공직생활 기간 동안 늘 현실보다 좀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가겠다는 신념으로 일해왔습니다. 이런 점이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배경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의 인생관은 제가 ‘부단의 반성과 부단의 노력’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으면서 형성됐다고 생각합니다. 이 좌우명은 제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방학 때 국어선생님께서 보내주신 편지에서 비롯됐어요. 선생님은 그때 편지에서 저에게 ‘부단의 반성은 불멸의 군자를 낳고 부단의 노력은 불후의 위인을 낳는다’는 자세로 살아가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제가 불멸의 군자나 불후의 위인은 못 됐지만 선생님의 가르침은 저에게 큰 교훈이었습니다. -살면서 멘토(정신적 스승)로 생각하신 사람이 있습니까. ▦인생의 멘토라면 저와 함께 하셨던 모든 분들이지요. 그중에서도 특히 제가 모셨던 이홍구 전 총리와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전 총리는 공직자로서 덕망을 갖추셨고 임 전 장관은 지혜로운 분이셨습니다. 두 분은 제가 덕과 지혜를 배울 수 있었던 인생의 사표였습니다. ◇약력 ▦1954년 경남 마산 ▦마산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미국 캘리포니아대 대학원 국제정치학(수료), 서강대 정치학 박사(수료) ▦국토통일원(통일원ㆍ통일부 전신) 조사연구실 ▦통일원 정보분석실 제1분석관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실 통일비서관 ▦통일부 통일정책실장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정책조정실장 ▦제15대 통일부 차관 ▦통일부 장관 직무대행 ▦통일연구원장(현) 李원장의 통일관은 “남북관계는 미래산업…교류·협력 늘려야” 이봉조 통일연구원 원장은 틈만 나면 등산과 여행을 즐긴다. 요즘 공직생활을 그만두고서야 뒤늦게 시작한 골프나 큰아들이 생일선물로 준 12권짜리 책 '신의 물방울'을 읽으면서 와인에 대한 흥미를 갖기 시작했지만 등산ㆍ여행의 재미만 못 하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이런 여가시간의 활용은 건강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생각을 정리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전국 어느 산이든 자연경치나 거리를 따지지 않고 찾는다. 여행도 딱히 어디를 정해놓고 가는 게 아니라 무작정 떠나 발길이 머무는 곳이 목적지다. 산에 오르거나 여기저기 다니면서 많은 사색을 한다. 특히 우리 민족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는 최근 자신의 화두가 '미래'라며 "남북관계는 미래산업"이라고 말했다."과거에는 남북 대화가 총 없는 전쟁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당국 간 대화가 일상화돼 일정한 틀을 갖고 움직일 정도로 발전했다"며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그 자체가 남북 7,000만 겨레의 미래를 위한 것이고 밝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교류와 협력을 계속 증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측면에서 7년 만에 양 정상이 한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그 자체만으로도 남북관계는 한단계 도약하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그의 열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대북정책 기획 전문성, 남북협상 실무경험, 국제정세 이론을 겸비한 대북정책통으로 꼽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는 남북관계와 관련된 업무만 무려 26년간 맡으면서 통일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요직을 두루 거친 대북정책의 산증인이다. 남북한 당국자 간 대화가 본격 개시된 지난 1990년대 초 총리를 대표로 하는 고위급회담의 실무자로 참여했다. 이 고위급회담의 결과로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기도 했다. 또 1998년 대북 포용정책의 기틀 마련에 참여했고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추진 실무팀을 맡아 대북 화해ㆍ협력을 이끌어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연속성을 잇는 가교역할을 했다. 특히 그가 첫 남북 정상회담의 후속조치인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건설, 철도ㆍ도로 연결 등을 이행 또는 실현 가능하도록 실무적으로 뒷받침한 점은 남북관계 발전사의 소중한 자산으로 평가된다. 그의 남북 평화론은 정말 단순하고 명쾌하다. 교류와 협력을 증진시키면 평화는 자연스럽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남북이 '서로 만난다는 것' 그 자체가 평화를 위한 첫걸음이라는 말이다. 그는 "우리 겨레가 한곳에서 사는 통일은 당장은 어렵고 사람과 물자가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통일이 우선 가능하리라 생각한다"며 "물론 그 이후에 하나의 헌법ㆍ국가ㆍ체제가 더 바람직하다고 보게 되는 시점이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통일시대는 바로 그런 순간인 셈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통일연구원을 새로운 시대환경에 맞게 기능을 재편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는 "지난 16년간 통일연구원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해왔지만 북미 간 적대적인 틀 속에서 남북관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며 "이제는 통일연구원이 한단계 더 도약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연구기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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