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임실에서 태어난 선생은 일제에 맞서 목숨을 끊은 송병선과 항일투쟁에 나섰던 기우만 의병장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수십 년에 걸쳐 각지를 돌아다니며 독립투사의 항일사적과 애국지사의 행적 등 항일투쟁 기록을 모았다. 법정에서 애국지사의 재판 과정을 방청하고 초야에 묻힌 애국지사의 충절을 발굴해 염재야록을 편찬했다.
1938년 선생의 호를 따 제목을 붙인 염재야록 편찬 사실이 일경에 발각되어 임실경찰서로 연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선생의 글과 집안 대대로 간직해온 다양한 자료가 모두 압수됐다.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집으로 돌아왔으나 울분을 참지 못하다가 일제의 단발 종용에 결국 자결 순국했다. 염재야록은 당시 의병운동사와 독립운동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
정부는 항일 의병과 애국지사의 행적을 목숨 걸고 기록한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