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기술의 '메카'인 카이스트(KAISTㆍ한국과학기술원)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7월 MIT 교수출신으로 제13대 총장에 취임한 서남표 총장은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세계 10위권 명문대학으로 도약하기 위해 '내부 개혁'과 '재정 확충'등 2가지 과제를 내걸고 카이스트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단 8개월간의 짧은 기간이 지났을 뿐인데도 카이스트의 개혁은 벌써 과학계는 물론 산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 대학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했으면서도 해결 하는데 주저했던 문제들을 카이스트가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MIT식 학과장 중심제 도입 = 카이스트 관계자들에 따르면 서 총장은 최근 학내 관계자들을 불러 놓고 "내부 기본개혁은 이미 끝났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취임 후 불과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무모할 만큼 강한 자신감을 내비친 그의 '내부 기본개혁'은 다름아닌 '학과장 중심제'이다. 그는 취임 후 곧바로 메사추세츠공대(MIT)식 '학과장 중심제'를 국내 대학 최초로 카이스트에 도입했다. 국내 대학에서는 교수가 갖는 명예직 정도로 치부돼 오던 학과장에게 인사(교수 임면권)와 예산집행이라는 막대한 권한을 부여했다. 카이스트 내 개별 학과장들에게 총장이 가지고 있던 권한을 위임, 이들을 카이스트의 독립된 최고경영자(CEO)로 승격시킨 것이다. 하지만 모든 학과에 민간 재력가 등으로 짜여진 '학과 자문위원회'를 구성토록 해 각 학과에서 사용할 재원을 자체 조달토록 하는 등 주어진 권한에 상응하는 막대한 경영책임을 부여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에만 기존 학과장 22명 중 절반인 11명이 바뀌는 대대적 체질 개선이 이뤄졌다. ◇"돈이 있어야 세계 10위 간다"= 대학재정 문제는 서 총장으로 하여금 위기의식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그 스스로도 "첫째도 돈, 둘째도 돈, 셋째도 돈이다"고 말할 만큼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진입하기 위해 카이스트가 넘어야 할 가장 높은 산이라는 것이다. 서 총장은 최근 정부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을 벌였다. 매년 1,000억원 규모의 정부 지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재원을 시장에서 직접 끌어쓰기로 결정한 것이다. 총 350억원 규모의 예산이 투입될 최첨단 연구개발(R&D) 연구소 'KI(KAIST Institute)'를 설립하고 해당 연구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우리은행으로부터 150억원을 빌리기로 했다. 이 같은 계획이 알려지자 정부는 국내 대학이 외부에서 수 백억원의 돈을 빌려 사업을 하는 전례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사업 추진에 난색을 표했다. 서 총장은 그러나 집요하게 정부를 설득, 최근 '담보 범위 내에서 차입하는 방안은 고려가 가능하다'는 수준으로 정부 입장을 돌려 놓았다. 장순흥 카이스트 교학부총장은 "500억원 범위 내에서 차입이 허용될 것"이라며 "오는 28일 카이스트 정기 이사회에서 이 안건이 통과되면 연내 KI의 착공이 이뤄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연구의 질과 양을 확충하라= 카이스트는 현재 해외 유명 대학들로부터 복수 학위제를 체결하자는 잇단 '러브콜'을 받고 있다. 독일 베를린공대와는 이미 협약을 체결했고, 미국 조지아공대와는 서명만 남겨둔 상태다. 교수확충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400명 수준인 교수로는 세계와 경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서 총장은 정부 지원을 통해 150명, 자체 재원 조달을 통해 150명 등 총 300명의 교수를 추가로 확보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아울러 교수의 질적 우수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 능력 없는 교수는 가차없이 퇴출시키는 '영년제(永年制)'를 지난해부터 대폭 강화했다. 2006년을 기점으로 신입과 경력을 불문하고 향후 7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간의 능력과 업적을 평가, 잔류 여부가 결정된다. 정교수가 된 후 적용되는 영년제 시기가 대폭 앞당겨진 것. 반면 유능한 교수에 대해서는 '특훈교수'라는 호칭을 부여, 카이스트 내 최고의 영예교수로 추대키로 하고 올 초 특훈교수 3명을 첫 임명했다. 이들에게는 연봉의 30%가 인센티브로 추가 지급된다. 서총장은 "지금까지는 돈이 안 들고 이뤄지는 (내부)개혁은 거의 이뤄지고 있다"며 "재원과 양질의 우수 인력 확보를 위한 노력을 한층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