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3국을 필두로 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본격적인 환율 공조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무르익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시작된 헤지펀드들의 아시아 통화 공격으로 원화는 물론 엔화 등 아시아 통화들이 경제 펀더멘털보다 고평가를 받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다니가키 사다카즈 일본 재무상이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아시아 통화들이 시장 펀더멘털에 벗어나 필요 이상의 강세를 보일 경우 국가간 공조를 해야 한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다니가키 재무상은 “시장 펀더멘털에 벗어나 엔화가 움직일 경우 일본 정부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요사노 가오루 금융ㆍ경제재정상도 “환율은 기초 경제여건을 반영해야 한다”며 “외환시장의 급격한 움직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 관료들이 잇따라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것은 일본 기업들의 수출매물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엔ㆍ달러 환율이 심리적 지지선이 114엔대가 무너지는 등 비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다는 우려감 때문이다. 그렇다면 헤지펀드들의 공략에 맞서기 위해 한중일 3국간 공동으로 취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다니가키 재무상은 “일본은 한국 정부와 아시아 통화 강세에 대한 대처방안을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는 말로 환율절상 압력을 줄일 방안이 있음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권태균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도 “양국간에 항상 대화채널이 열려 있으며 한일간 긴밀한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복안이 아직 공개된 것은 아니다. 그만큼 동아시아 국가간 환정책 공조가 말이 쉽지 실현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2004년 11월 당시 글로벌 달러약세에 대응하기 위해 한일 양국간 공조가 모색되기도 했다. 당시 원화환율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신청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달러당 1,050원대가 붕괴됐고 일본도 달러당 100엔을 위협받는 등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달러약세에 대한 우려감은 지금과 마찬가지였다. 당시 정부 안팎에서는 일본이 시장개입에 나서고 한국도 발권력을 동원한 달러매입을 강화하는 협조체제가 구축될 것이라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구체적인 액션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변동환율제 아래에서 양국이 드러내놓고 공동개입에 나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일본은 개입이 무제한 가능한 반면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는 등 나라마다 경제사정이 다르다”며 “한중일 3국간 환율 공조는 각국의 시장상황을 비롯해 정보를 교환하는 수준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지난해 5월 한중일 3국 중앙은행이 체결한 통화스와프 계약도 연초 통화절상 압력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데다 당시 외환시장 안정조치로 거론됐던 원ㆍ엔 환율 직거래 시장 역시 아직 구체화되지 않고 있다. 한중일 3국의 경제규모를 고려한다면 굳이 달러에만 기댈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국가들간 환율 협조의 경험이 워낙 일천한데다 각국의 환율체제와 정책도 판이해 공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체제를 대신할 ‘대안적 역내환율체제’ 구축에 대해서는 정부와 전문가들 모두 공감하고 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이 바로 동아시아 국가의 외환공조를 현안으로 논의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국제금융센터의 김종만 박사는 “금융경쟁력과 자생력 강화를 위해 헤지펀드와 주기적으로 접촉하는 정보를 교류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글로벌 달러약세가 더욱 확산되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