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러 경협차관 문제 신중한 접근을

국내 시중은행들이 러시아에 빌려주었다가 받지 못한 경협차관을 정부가 대신 갚아 주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의 대지급(代支給) 재원은 결국 국민의 세금이라는 점에서 정부 부처사이에서도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우선 예산으로 은행들에 대신 갚아준 후 차관을 돌려 받겠다는 입장인 반면 기획예산처는 러시아와 상환협상을 확실히 한 다음 예산지원 여부를 결정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러시아 태도를 보면 차관을 돌려 받는 데는 상당한 인내심이 요구될 것으로 보여 논의에 신중을 기해야 할 대목이다. 우리나라가 러시아에 공여한 차관은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지난 1991년 국내 10개 시중은행이 정부보증 하에 이뤄진 것으로 모두 14억 7,000만달러에 이른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3억7,000만달러를 현물(방산물자 2억1,000만달러, 원자재 9,000만달러, 헬기7,000만달러)로 상환 받았을 뿐, 원금과 이자를 합쳐 19억5,000만달러(2조3,000억원)로 늘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지급보증분인 17억7,400만달러(2조850억원)가 오는 9월7일로 보증기간이 만료 된다는 점이다. 은행들로서는 정부에 대해 지급보증분의 대지급을 요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재경부가 이를 내년 예산에 1차로 5,000억원을 요청한 것도 이해가 간다. 러시아에 대한 경협은 당시 우리정부가 구(舊)소련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위해 사용한 당근이었다. 러시아가 차관 상환에 난색을 표하기 시작한 것은 구 소련체제가 무너지면서 경제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부터다. 98년에는 한국은 물론 전세계에 '채무불이행 사태'를 선언하게 이르렀다. 다행히 국제원유가 폭등으로 경제가 되살아 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루블화가 예전의 위세를 찾으려면 아직도 요원하다. 정부는 러시아와 지금까지 10여차례에 걸쳐 상환협상을 벌여 왔으나 견해차이로 번번히 무위로 돌아갔다. 러시아의 상환기간 연장과 이자율의 대폭 인하 요구 등이 걸림돌이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의 채무불이행 사태와 관련, 이자율을 탕감해 주는 등 선례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민정서상 이해를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 현물상환이나 러시아 수역내 입어료의 상계 등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협상의 기술이 요체인 것이다. 재경부나 기획예산처의 주장도 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러시아가 우리의 유망 수출시장이자 한반도 안정에 절대적인 열쇠를 쥐고 있다는 점 등 여러가지 상황으로 보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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