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美감세안과 하원의 술수

`철면피`를 아주 고전적으로 정의하면 부모를 살해하고도 고아가 되었다는 이유로 뻔뻔하게 용서를 구하는 꼴이다. 하지만 입양된 가정에서의 양부모마저도 살해하고 또 다시 용서를 빌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을 지난 주 금요일 5,500억 달러의 감세안을 통과시킨 미 하원에게 던지고 싶다. 이번 감세안은 이른바 ` 미끼- 전환(bait-and-switch)` 술수를 쓴 지난 2001년 감세안과 별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당시 감세안은 정치인들이 일반 국민과 언론의 눈치를 보고 정치적인 술수를 쓴 것인데, 이번 감세안에도 그 같은 술수가 그대로 먹혀 들었다는 얘기다. 2001년 당시 영향력 있는 몇몇 상원 의원들은 감세안 규모를 어느 정도까지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상원과 하원은 감세 조치가 10년차에 종료된다는 `일몰 조항(sunclause)`을 주요 감세 조치에 삽입한다는 선에서 타협을 보게 됐다. 일례로 엄청난 규모의 유산을 물려받기로 되어있는 상속자가 2010년에 그들 부모가 죽으면 세금을 한 푼도 안내는 반면 2011년에 죽으면 고율의 세금을 내게끔 돼 있었다. 두말 할 필요도 없이 그 법안은 아주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당시 미 행정부는 이에 대해 타협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단지 그 일몰조항이 미래에 자연스럽게 폐기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이 사상 최대의 재정적자 늪으로 빠져 들고 있는 이 마당에 하원은 또 다시 막대한 규모의 감세안을 통과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행정부는 7,260억 달러의 본래 감세안이 하원에서 5,500억 달러로 수정된 점을 강조하고 있는 형편이다. 은근히 행정부가 양보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 하지만 이도 알고 보면 미 행정부에서 내놓은 원래 안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 아니다. 바로 교묘하게 `일몰조항`을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실제 많은 감세 조치들은 2005년에 효력이 끝나고 또 일부는 2012년까지 효력이 유지되게 끔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이번 감세안은 여러모로 2001년 감세안과 유사한 점이 많다. 2001년 감세안에서는 감세 혜택의 40%가 상위 1%에 달하는 부자들에게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감세안이 보통 국민들을 위한 것으로 공공연히 선전됐다. 이번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실제 평균소득 가구가 매년 겨우 217달러의 감세 혜택을 받는 반면 100만 달러 이상의 소득을 벌어들이는 최고소득 가구는 평균 9만3,500달러의 혜택을 받게 돼 있다. 고용 창출 측면에서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번 감세안으로 14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지만 이것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설사 일자리가 새로 창출된다 해도 대부분 저임금의 허드렛일에 불과하다. 2001년 감세안 시행 후에 오히려 170만개의 일자리가 사려졌다는 사실이 이를 잘 반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감세안이 전격 통과됨으로써 미국의 재정적자 확대는 불 보듯 뻔한 것이 됐다. 재정적자 확대로 미국의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훗날 외국 투자자들은 미국을 신용상태가 극히 나쁜 중남미의 소위 `바나나 공화국`에 빗댈지도 모른다. 그들의 투자자금에 대해 우리가 높은 이자를 제공하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 미국의 무역적자를 메워 줄 수 없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폴 크루그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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