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영웅전 제2보늘 손해를 본 노사초
노사초는 바둑을 그냥 두는 법이 없었다. 아주 작은 내기라도 걸어야 비로소 신명을 내었다. 상대에게 돈이 없을 경우에는 담배 한 봉지라도 걸게 했다. 8점 또는 9점의 하수와도 예사롭게 내기바둑을 두었다.
그의 사랑채에서 내기를 둔 인물로는 대구의 채극문, 고령의 윤경문, 밀양의 민중식 등의 국수급을 위시하여 진주의 정병조, 함양의 권일환, 합천의 정현복, 춘천의 조동화 등의 군기급을 들 수 있다.
바둑은 순장바둑이었으며 국수급은 노사초와 호선, 군기급은 치선이나 복치선(2점)으로 두었다. 노사초는 국수급 가운데서도 명성이 자자하여 「녹일(綠一)」이라는 추앙성 별명을 들었다. 압록강 이남에서는 제일 고수라는 뜻이었다.
치수가 헤펐을 뿐만 아니라 성품도 지나치게 너그러웠으므로 노사초는 내기에서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한번은 전남 광주에서 일본인 부읍장과 비교적 큰 내기바둑을 두게 되었다. 한국인 전주(錢主)들이 둘러앉아 구경을 하는 가운데 대마 사냥이 벌어졌다.
일본인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대마를 살려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노사초는 다 잡았던 대마를 슬그머니 살려 주고 도리어 미세하게 패하고 말았다. 선주 중의 하나가 물었다.
『왜 대마를 살려 주셨습니까』
노사초는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가 천무진살지리(天無盡殺之理)가 아닌가. 하늘의 이치가 전부를 죽이는 법은 없거든. 대마를 살려 주고 조금만 이기려고 했는데 내가 계가를 잘못 해서 진 것일세.』
이런 식이었으니 언제나 내기를 즐겼으면서도 돈을 따지는 못했던 것이다.
노승일·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0/07/2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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