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립 브로피 'Vox'. 마주 선 남녀는 말과 논리가 아닌 피부의 변형과 왜곡으로 소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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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는 인종과 혈통을 드러내며 살결은 나이와 지나온 삶을 짐작케 한다. 소통의 도구로서 몸은 언어로 표현하는 것 이상의 힘을 가진다. 자아를 드러내고 사회적 의미를 함축한 매체로서 ‘피부’에 관한 현대미술의 담론이 신사동 코리아나 미술관의 ‘울트라스킨’전에서 펼쳐지고 있다.
벌거벗은 아랍 여성이 정성껏 수를 놓고 있는 곳은 자신의 피부. 종아리와 허벅지에 아라베스크 문양이 선명하다. 프랑스 사진작가 니콜 트라 바방의 작품 ‘벨린다’로, 아랍 문화가 여성들에게 씌운 구속의 역사를 웅변하고 있다. 바방의 영상물 ‘스트립 티즈(Strip Tease)’는 외모부터 정체성과 성별까지 위장할 수 있는 ‘화장’에 대해 얘기한다.
4개의 화면에 화장한 네 사람이 등장하는데 화장을 덧칠할수록 역설적으로 화장은 점점 지워져 종국에는 이들의 민낯까지 드러난다. 처음엔 모두 미모의 여인으로 보였지만 이 중 둘은 남성이다.
호주의 미디어작가 필립 브로피의 영상물은 마주보는 남녀의 소통 과정을 보여준다. 둘의 대화는 말이 아닌 얼굴 피부의 변형을 통해 이뤄진다. 몸이 찢어지고 터져라 외쳐대는 상대를 멀뚱히 지켜보는 이성의 시선이 냉소적이다. 외계인처럼 변한 신체는 성기를 은유한다. 초콜렛을 온몸에 바르고 끈적하게 뒤엉킨 남녀의 육체를 찍은 영국 작가 마커스 톰린슨의 영상작품과 비교해서 볼 만하다.
또한 사회적 지위에 맞게 피부마저 변화한 이동욱의 작은 인물조각, 몸에 난 상처를 통해 산업화로 굴곡진 역사를 은유한 김재홍의 회화 ‘거인의 잠’, 실뜨기 작업으로 연약한 인간과 얽힌 인생을 표현한 조소희의 작품 등도 눈길을 끈다.
지하 1층 마지막 전시실에는 중국의 미술가 그룹 ‘언마스크’의 3m 설치작품이 걸려 있다. 작가 3명의 신체 일부를 본떠 하나의 띠로 만든 인체인데 몸의 불완전함과 근원적 상실을 표현한다. 젊은 육체를 가진 작품의 그림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늙어 등이 굽은 노파의 형상이다.
2개 층에 걸쳐 국내외 작가 18명의 회화, 영상, 사진, 설치작품 등 30여 점이 9월30일까지 전시된다. (02)547-9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