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건설업체 설계 겸업' 건축업계와 갈등 재점화

건교부, 업무범위 한정등 '제한적 허용' 방침에<br>건축사 "설계 독창성 상실등 質저하 초래" 반발<br>건설업계선 "세계적 추세… 해외입찰서도 유리"


건설업체에 대한 설계 겸업 허용 문제가 건설ㆍ건축업계에 ‘태풍의 눈’으로 부상하고 있다. 건설업계의 설계시장 개방 요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97년 규제개혁의 바람이 불 때도 이 같은 이슈가 제기됐지만 건설업체가 직접 사용하는 사옥(社屋)은 건설업체에 속한 건축사도 설계할 수 있도록 한다는 선에서 건축사와의 갈등이‘봉합’됐다. 하지만 국무총리실 규제개혁기획단이 지난 3월 건설업체에 대한 설계 겸업의 제한적 허용 방안 검토를 건설교통부에 통보하고 최근 이에 대한 마무리 작업이 진행되면서 양자간 힘겨루기가 8년 만에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건교부, 제한적 겸업 허용에 무게=현재 건설업체의 설계 겸업에 대한 명시적 금지조항은 없는 상태다. 다만 건축사법 23조가 사실상의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조항에는 ‘건축사가 건축사업무를 수행하고자 할 때는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해 건교부 장관(시도지사 위임)에게 신고해야 하며 상호에는 건축사사무소라는 명칭을 사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법인인 경우에는 대표자가 건축사이어야 한다는 규정으로 인해 사실상 건설업체는 설계 겸업을 할 수 없다. 건교부는 건설업체에 대한 겸업 허용이 규제개혁기획단에 의해 추진된다는 점에서 건축사보다는 건설업체의 입장에 무게를 두는 듯한 분위기다. 실제 건교부는 일정 수 이상의 건축사를 두고 업무범위를 해당 건설업체가 건설하는 건물로 한정해 건설업체의 설계 겸업 허용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건축사사무소의 규모가 건설업체에 비해 영세한 것을 감안, 독립 건축사의 영업활동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설계만을 수주받는 행위’는 제외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건설업체에 속한 건축사도 일정 기간 건축사사무소에서 일한 경력을 갖춘 경우에만 설계를 인정하는 방안 역시 검토 중이다. 하지만 이 같은 방침은 건교부 내에서도 비토 기류가 있고, 특히 건축사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어 아직까지 결과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태다. ◇건설업계, “설계 겸업은 세계적 추세”=건설업계가 설계 겸업 허용을 요구하는 배경에는 이웃 일본의 사례가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은 현재 민간공사에 건설업체의 설계 겸업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또한 시공과정에서 개발된 건설업체의 기술과 공법이 설계에 원활히 반영되지 못해 건설기술 발전을 저해한다는 지적과 해외입찰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도 건설업체의 설계 겸업이 필요하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 해외 발주자는 최근 시공사에 설계 경험을 요구하고 있으며 단순 시공을 넘어 기획ㆍ관리까지 담당하는 건설사업관리업(CM)으로의 전환을 위해 설계 겸업은 필요충분 조건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윤호 대한건설협회 건설진흥본부장은 “최근 세계적 추세는 디자인 빌드, 즉 설계와 시공을 함께 묶어 상품으로 제시하고 발주자가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우리의 경우 건설업체가 아무리 유능한 건축사를 보유하고 있어도 건축사사무소의 설계가 아니면 건축허가를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최 본부장은 이어 “건설업체에 대한 전면적 설계 겸업 허용이 어렵다면 자기공사, 턴키공사, 제안형 사업 등으로 건설업체가 직접 설계할 수 있는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축사, “겸업 허용은 설계발전 저해”=건축사들은 건설업체에 대한 설계 겸업 허용이 결국 건설업체의 설계시장 잠식이란 결과만 가져올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한명수 대한건축사협회 법제위원회 이사는 “건설업체에 설계 겸업을 허용할 경우 건축설계가 시공편의 위주 또는 이윤추구 수단으로 이용돼 설계의 독창성이 상실될 수 있다”며 “특히 건축설계를 공사수주 또는 입찰 때 가격경쟁의 수단으로 이용해 건축물의 질적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이사는 특히 “건설업체에 제한적으로 겸업을 허용할 경우에도 대형 건설업체가 설계시장을 잠식, 건축사사무소는 건설업체의 하청업체로 전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H건축사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최근 아파트 등에서 보듯 설계가 디자인 측면보다 기능적 측면만 강조되면서 시공사가 설계까지 하겠다는 발상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D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시공업체의 특성상 설계 겸업을 허용하면 시공하기 좋은 형태의 설계만 양산, 결국 값싼 건축물만 만들어내는 등 설계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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